'독촉'하는 부모 vs '보호'하는 부모
'독촉'하는 부모 vs '보호'하는 부모
  • [자투리경제=박영석 SNS에디터]
  • 승인 2018.08.14 16: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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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 서열화는 엄연한 현실이다. 그래서 명문대와 비명문대 그리고 인기학과와 비인기학과로 구분지어 보는 일이 많다. 이를 아무런 문제의식 없이 어쩔 수 없는 현실로 인정하는 순간 아이를 바라보는 부모의 관점은 매우 편협해진다. 명문대와 인기학과에 합격할 가능성이 있는 아이와 그렇지 못한 아이로 구분될 수밖에 없다. 아이의 독특한 개성과 잠재력, 발전가능성은 부모의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오히려 입시에서 경쟁력으로 인정받을 수 없는 그런 잡다한(?) 아이의 면면들에 화가 날 가능성이 매우 높다.
 
"우리 아이는 머리가 나쁘지는 않은데 공부를 안 하는 게 문제라니까요!"

부모들에게 흔히 들을 수 있는 말이다. 아이의 진면목을 알아봐주지 않는 사회를 탓하는 것이 아니라 아이를 탓하는 것이다. 여기에서 부모역할은 갈림길에 선다. 대학의 서열화라는 기존 질서에 순응하여 어떻게 해서라도 아이의 서열이 더 밀리지 않도록 적극 나서는 경우가 현재는 대세다. 대학 서열화는 매우 심각한 사회문제라고 비판하면서도 개인적으로는 어쩔 수 없다고 굴복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결국 아이에게 끊임없이 공부를 '독촉'하는 부모가 된다.

다른 경우는 불합리한 현실에서 피해를 입지 않도록, 희생양이 되지 않도록 아이를 '보호'해야 한다는 생각이다. 지나친 경쟁이 싫어 아이를 대안학교에 보내고 싶다는 부모의 마음이 그런 경우라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아이가 어릴 때는 그런 생각을 하다가도 고학년이 되어 입시가 다가오면 생각이 바뀐다. 아이의 행복만을 생각해 대안학교에 보낸 부모들이 입시라는 피할 수 없는 현실을 너무 가볍게 생각했다는 반성문을 쓰면 '보호'의 관점은 힘을 잃고 '독촉'의 관점이 득세하게 된다.

거듭 강조하지만 교육의 공공질서가 무너진 상황에서 학부모의 역할은 결정적이다. 부모의 경제력과 정보력이 중요해졌다고 하는데 사실상 공교육의 입시 준비 기능이 그만큼 위축되었다는 의미가 된다. 학부모 SNS를 보면 실감나게 확인할 수 있다. 심하게 말하자면 학교에서는 학생부 기록만 받고 나머지는 대부분 학부모들이 정보를 수집해 실질적인 입시준비를 하고 있다. 사실상 학부모들이 입시지도를 진두지휘하고 있는 것이다.

재수학원 원장 시절 입학상담을 할 때 학생 혼자 오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심지어 부모가 혼자 와서 상담을 하고 등록을 하는 경우도 적지 않았다. 부모와 아이가 함께 상담하는 경우에도 분명 질문을 학생에게 했는데 대답은 부모가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학부모들이 아이를 대하는 태도를 보면 대부분 '독촉' 쪽임을 쉽게 확인할 수 있었다.

문제는 '독촉'의 승률이 매우 낮다는 사실이다. 부모역할의 대세가 그쪽이기에 대부분 모방하지만 또 대부분 실패한다. 겉과 속은 보통 다르다. 현상과 본질도 마찬가지다. 겉모습만 보면 '독촉'하는 학부모들이 성공사례의 대부분을 차지한다. 하지만 실패사례의 대부분도 '독촉'하는 경우에서 나온다. 성적으로 줄 세우기 경쟁에서 늘 명문대, 인기학과의 선발 인원은 정해져 있다.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경쟁에 뛰어들었지만 역시나 실패를 피할 수 없다. 해방 이후 계속 되어온 소수의 성공과 그들의 성공을 빛나게 해주는 패배자를 대량 배출하는 입시 구조는 변함이 없다. 정말 그런 절망적인 구조에서 빠져나올 수 있는 방법은 없는 걸까? 입시 경쟁에 참여하지 않으면 정말 자신이 원하는 대학에 도저히 갈 수 없는 걸까?

아니다. 실패확률은 크게 낮추고 그 이상으로 성공확률을 높일 수 있는 길이 분명 존재한다. 새로운 입시 준비의 길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관점의 전환으로부터 시작해야 한다. 공부 '독촉'에서 벗어나, 아이를 '보호'하는 관점에 서야 비로소 새로운 길이 보일 것이다. 문제는 새로운 입시의 길이 없는 것이 아니다. 그런 희망적인 길을 볼 수 있는 관점으로의 전환이 어렵다는 데 있다.

부모와 학부모를 굳이 구분하자면 학부모의 욕망을 자극하고 충족하는 타락한(?) 경우를 제외한 대부분의 부모교육에서 '보호'의 관점에 서야 진정한 부모역할이 가능하다고 강조한다. 하지만 입시 경쟁이 요구하는 아이의 성적보다는, 성적으로 드러나지 않는 숨겨진 가능성을 믿고 '보호'하는 관점을 유지하려면 끊임없이 '독촉'의 욕망을 참아야 한다. 그래서 급기야 사리가 생긴다는 푸념까지 하게 되는 학부모들도 많다.

"소장님 말씀 들으면 깊이 반성하게 됩니다. 제 마음대로 아이에게 못된 짓을 한 것 같아 미안해집니다. 하지만 오래 가지 못해요. 아이를 믿고 기다린다는 게 너무 어렵습니다. 그래서 솔직히 소장님을 원망하게 됩니다. 괜히 현실적으로 실천 가능한 방법도 없으면서 아이에게 죄책감만 느끼게 한 것 아닌가요!"

위처럼 노골적으로 원망을 쏟아내는 경우는 그렇게 많지 않지만, 학부모들과 대화를 하다보면 그들의 심정을 충분히 느낄 수 있다. 그렇게 하나 둘 다시 대세에 합류한다. 다시 아이에게 공부를 '독촉'하는 부모로 돌아가는 것이다. 그리고 그 결과는 경쟁의 주인공이 아니라 들러리로 전락하는 아이를 지켜보면서 악 쓰고 속상하고 원망하는 부모의 모습이다.

그렇게 입시 경쟁의 소용돌이에 휘말려 너무도 많은 것을 잃고 만다. 절대 다수의 국민이 비난하는 대한민국 교육은 사실 입시전쟁터에 다름 아니다. 입시 전쟁 통에서 하나나 둘 밖에 없는 소중한 자기 아이를 지키기 위한 부모 역할은 분명 ‘보호’가 되어야 마땅하다. 그렇지 않아도 끊임없는 순위 경쟁에서 밀릴 때마다 의욕을 잃고 포기하고 싶은 마음이 들 텐데 부모까지 공부를 독촉할 뿐 자신의 안타까운 처지를 외면한다면 승패를 떠나 제대로 완주라도 할 수 있단 말인가? 사회는 끊임없이 패배자가 될 것이라고 비관하는 아이에게 진정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부모만큼은 패배의 책임을 아이에게만 묻는 것이 아니라 성적으로 줄 세우기만을 허용하는 잘못된 입시 구조에도 물어야 하는 것은 아닌가? 아이를 입시경쟁 구조에서 보호하려는 마음을 부모가 조금이라도 갖고 있다면, 그것이 낙관이 되어 사회가 강요하는 비관을 이겨낼 수 있는 힘을 줄 것이다. 그래야 모두가 좌절하지 않을 것이다.

<글 : 박재원 행복한 공부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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