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 집을 나서면서 결코 빼먹어선 안 되는 소지품이 있다면, 스마트폰 그리고 신용카드다.

그런데 늘 손에 쥐고 있는 스마트폰과 달리 신용카드에 대해 우리는 얼마나 잘 알고 있을까? 한 번쯤 궁금했지만, 굳이 알아보지 않았던 신용카드의 소소한 비밀을 풀어본다.

# 신용카드는 누가 만들었을까?

1950년 뉴욕의 사업가 프랭크 맥나마라(Frank Mcnamara)가 맨하탄의 한 식당에 저녁을 먹으러 갔을 때의 일이다. 저녁을 다 먹은 후에야 자신이 현금을 하나도 소지하지 않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곤욕을 치른 맥나마라는 현금이 없어도 구매가 가능한 일시불 카드를 고안하고, 이 아이디어를 상용화하기 위해 ‘다이너스 클럽(Diners Club)’이라는 회사를 차린다. 글자 그대로 '저녁을 먹다(dine)'와 동료 또는 멤버십의 뜻을 지닌 '클럽(Club)'을 조합한 ‘식사하는 사람들의 클럽’이었던 셈이다.

한편에선 그의 동업자였던 알프레드 블루밍데일(Alfred Bloomingdale)이 회사를 홍보하기 위해 꾸며낸 이야기라는 설도 있지만, 어쨌든 이렇게 식당에서 사용 가능했던 ‘다이너스 클럽’의 회원권이 현재와 같은 개념을 지닌 신용카드의 시초였다는 점은 정설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판지로 된 카드의 앞면에는 소지자의 이름과 계좌번호를 명시하고 뒷면에는 카드를 사용할 수 있는 식당의 이름이 적혀 있던 이 카드가 바로 현재의 ‘다이너스 카드(Diners Card)’의 모태인데, 당시 회원은 200명, 가맹점이었던 식당은 14곳, 연회비는 5달러였다고 전해진다.

그렇다면 우리나라 최초의 신용카드는 무엇일까? 1978년 외환은행이 비자(Visa)카드와의 제휴로 해외여행자를 위해 제한적으로 발행한 신용카드가 시작이었다. 이후 1980년엔 국민은행이 카드 사업에 진출했고, 1982년엔 5개 시중 은행(조흥, 한일, 서울, 제일, 상업)이 공동으로 BC카드를 발급한다. 특히 1987년엔 ‘신용카드업법’이 제정되면서 여러 전업 카드사들이 등장해, 그야말로 신용카드의 시대가 도래한다.

신용카드 번호는 어떤 원리로 구성돼 있을까?

일반적으로 국내에서 발행하는 대부분의 카드 번호는 16자리로 이루어져 있다. 이 때 앞에서부터 6자리 숫자를 BIN(Bank Identifier Number)이라 부르는데, 이 여섯 자리 숫자만 봐도 카드의 브랜드와 종류 등의 정보를 알아낼 수 있다. 그럼 여기서 각자의 신용카드를 꺼내볼까? 카드 번호가 4로 시작한다면 비자(Visa)카드, 51에서 55 사이라면 마스터(Master)카드, 9로 시작하면 국내 전용 카드다. 그 외에도 BIN은 해당 카드가 일반 등급인지 플래티넘 등급인지, 개인카드인지 법인카드인지 등 국제적인 표준 양식에 따라 카드의 성격을 규정한다.

BIN에 이어지는 7번째 자리부터 15번째 자리까지는 각 카드사가 임의의 규칙에 따라 사용하는 일련번호라 특별한 의미는 없다. 재미있는 점은 마지막 16번째 자리 숫자가 ‘룬 공식(LUHN Formula)’이라는 특정 공식에 따라 카드번호를 검증하는 값이라는 점이다. 아래 ‘룬 공식’에 따라 나의 신용카드 번호가 유효한 값인지 테스트해보자.

‘룬 공식’을 활용한 신용카드 번호 테스트 방법

1. 카드 번호의 모든 홀수 자리 숫자에 각각 2를 곱한 후 더한다. 이 때 나온 숫자가 두 자리 수라면, 각 자리의 숫자를 더한다.

2. 이번엔 짝수 자리의 숫자를 모두 더한다.

3. 1과 2의 값을 더한다.

4. 3에서 나온 수에 특정 숫자를 더한 후 10으로 나누어 떨어지도록, 마지막 16번째 자리 숫자를 결정한다.

만약 14가 나왔다면 20이 되어야 10으로 나누어 떨어지므로, 16번째 자리 숫자는 6이다.

 

# 신용카드 크기가 다 똑같은 이유는?

알고 보면 크기가 똑같은 건 신용카드뿐만이 아니다. 우리나라의 경우 주민등록증, 운전면허증의 크기 또한 85.60 x 53.98mm로 전부 똑같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신용카드, 주민등록증, 운전면허증 모두 국제표준화기구(ISO)가 지난 1985년 제정한 ID 카드에 관한 규격(ISO/IEC 7810)을 따르고 있기 때문이다. ID 카드에 관한 규격은 ID-1, ID-2, ID-3, ID-1000의 네 가지 종류가 있는데, 신용카드는 이 중 ID-1의 규격을 따르고 있다. (여권은 ID-3 규격, SIM 카드는 ID-1000 규격에 해당한다.)

물론 강제성은 없다. 다만 국제적으로 통용되는 표준 규격을 따르지 않을 경우 카드 단말기나 ATM에서 사용할 때마다 불편을 겪을 수 밖에 없으니, 강제하지 않아도 지킬 수 밖에 없을 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부 똑같은 크기에 지친 몇몇 신용카드들은 반란을 꾀하기도 한다. 현대카드가 지난 2003년 선보인 기존 카드의 3분의 2만한 사이즈의 ‘미니카드’, 심지어 네모나기를 거부하고 자동차 모양을 내세워 2004년 출시한 ‘프리폼(Freeform)카드’가 그 예다. 만약 신용카드가 단순히 결제 수단에 지나지 않았더라면 굳이 불편을 감수하는 모양과 크기를 선택할 리 있을까? 신용카드를 자신의 정체성을 보여주는 또 하나의 매개체로 여기는 소비자가 있기에 가능한 일이다.

# 혜성처럼 등장한 IC칩의 정체는?

흔히 카드를 ‘긁는다’고 말하지만, 이제 그 자리를 신용카드를 ‘꽂는다’는 표현에게 내줘야 할지도 모르겠다. 마그네틱카드에서 IC(Intergrated Circuit, 집적 회로)카드로 빠르게 변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기존의 마그네틱카드는 사람이 일일이 손으로 전표를 적던 방식에서 벗어나게 해준 획기적인 변화였지만, 데이터 용량이 적고 접촉량이 많아질수록 데이터 변형 가능성이 크며, 시장에 등장한 지 오래된 방식이라 쉽게 복사되거나 위조될 수 있어 보안성 측면에서 취약점을 지니고 있다. 이에 반해 1974년 프랑스의 로랑 모레노(Roland Moreno)가 특허를 내면서 알려지기 시작한 IC카드는 탁월한 보안성이 장점이다. IC에는 CPU, 메모리, 마이크로프로세서 등이 탑재되어 있으므로, IC 카드는 말하자면 아주 작은 컴퓨터를 품고 있는 카드라 볼 수 있기 때문이다.

 

흔히 앞면에 금속칩을 붙인 신용카드만을 IC카드라고 여기기 쉽지만 이 때 신용카드는 접촉식 IC카드 중 한 종류일 뿐이다. 이와 달리 IC칩을 카드에 부착하는 대신 카드 안에 무선 통신이 가능한 모듈과 안테나를 내장한 카드를 비접촉식 IC카드라고 부른다. IC칩을 단말기에 꽂는 것이 아니라, 카드 자체를 단말기에 터치하는 형태의 교통카드가 여기에 속한다.

‘신용카드(Credit Card)’라는 단어가 최초로 등장한 건 지금으로부터 약 130년 전인 1888년이다. 미국의 에드워드 벨러미(Edward Bellamy)가 발표한 소설 속에서 주인공 줄리안 웨스트는 1887년에 잠들었다가 2000년에 깨어나는데, 이 때 ‘화폐가 없이 모든 생필품의 구입 및 소비 생활을 위한 지불수단’인 신용카드를 처음 만난다. 당시 에드워드 벨러미의 상상 속 신용카드는 장부 형태였다. 그리고 실제 신용카드는 ‘보여주다’에서 ‘긁다’ ‘꽂다’ ‘터치하다’로 끊임없이 그 물성을 변화시키고 있다. 과연 미래의 신용카드는 또 어떤 모습으로 변신하게 될까? 130년 전 에드워드 벨러미가 그랬듯이 재미있는 상상을 한다면, 정말 이루어질지도 모를 일이다.

저작권자 © 자투리경제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