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지 않은 인생항로에서 후회스런 것들이야 이루 헤아릴 수 없이 많지만 가장 자주, 그리고 크게 아쉬움이 남는 건 어쩔 수 없이 건강이다. 다시 태어난다면 나는 이전 생과 다름없이 술을 즐길 것이다. 이 각박한 세상을 위로해주는 담배 한 개비 입에 물 용기도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그 대신 열심히, 정말 열심히 다리를 단련할 것이다.

제프리 라이프(Jeffry Life)는 할아버지 몸짱으로 유명한 미국의 의사다. 1938년생. 우리 나이로 여든한 살이다. 환갑까지 병원을 운영했다. 은퇴할 시간이 다가오자 제프리 박사는 새로운 모험에 나섰다. 몸짱이 되기로 결심한 것이다.

제프리 박사는 단순히 운동만으로 몸을 만들 생각은 없었고 그럴 자신도 없었다. 직업이 의사인 만큼 호르몬과 약물을 이용해 사라진 신체능력을 회복시키기로 했다. 고환암을 극복하며 시대의 영웅으로 추앙받았던 랜스 암스트롱을 사이클계에서 영구 추방시키고, 미국에서 제일 돈 많이 버는 야구선수였던 알렉스 로드리게스를 사기꾼으로 만든 테스토스테론이라는 남성호르몬과 스테로이드, 성장호르몬을 뒤섞어 투약했다. 그리고 불과 몇 년 만에 똥배 불룩한 육십대 남자는 이십대 청년도 울고 가는 근육질의 헐크가 되었다. 일흔세 살에 세계 최고의 몸짱 할아버지로 유명세를 타기 시작했다.

약물과 운동으로 신체를 개조한 제프리 박사는 누구든지 나이에 상관없이 자신처럼 될 수 있다고 말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1년에 약값만 1700만 원이 든다고 한다. 그래도 미국에서는 대인기다. 8천만 명에 달하는 미국의 은퇴세대가 제프리 박사처럼 제 2의 인생을 꿈꾸며 몸에 이런저런 약물을 투여하면서 운동하고 있다. 이런 사업이 작년에만 미국에서 8억 달러 규모로 성장했다.

그런데 문제가 있다. 약물에는 부작용이 따른다는 점이다. 스포츠가 약물을 금지하는 이유는 약물을 복용한 선수와 그렇지 않은 선수 간에 불평등한 조건이 발생해서만이 아니다. 부작용 때문이다. 장기적으로 호르몬을 투여한 사람은 고혈압과 암에 걸릴 확률이 높다. 성격도 변한다. 사소한 일에도 화가 나고 쉽게 우울해지고, 만에 하나 항정신성 약물을 복용해야 될지도 모른다. 약이 약을 부르는 패턴이 반복되면 신체는 점점 더 약물에 의존한다. 밥 없이는 살아도 약 없이는 못 사는 몸이 될 수도 있다. 과한 욕심에는 그만큼 부담스러운 위험이 따르기 마련이다.

나이가 들수록 가벼운 근육운동을 꾸준히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한다. 걷기, 수영, 스트레칭 같은 척추와 관절에 부담이 적은 운동을 조금씩, 꾸준히 해야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는 것이다. 통증이 느껴지지 않는 범위 내에서 운동을 하는 것이 중요하고 통증이 느껴질 때는 반드시 휴식을 취하거나 병원에 가서 물리치료를 받으라고 의사들과 전문가들이 권하고 있다. 나이에 맞는 운동, 나이에 맞는 삶, 무리하지 않는 생활이 말년의 철칙, 나아가서는 의무처럼 강요되고 있는 현실이다.

여기서 나는 한 가지 의문을 느꼈다. 미국의 노인들은 왜 1년에 1700만원씩 써가면서 몸짱이 되기를 바라는가. 이유는 간단하다. 그들이 원했기 때문이다. 젊은이 못잖은 근육을 뽐내고 싶어 검증되지 않은 약물부작용까지 감수하는 이유는 욕망 때문이다. 좀 더 나아지고 싶고 발전하고 싶은 열망이 아무리 애써도 감춰지지가 않아서다.

욕망과 욕심은 위험하다. 부작용이 있다. 하지만 욕망과 욕심 없이는 사는 건 재미가 없다. 하루하루가 간절해지지 않는다. 그처럼 재미없고 무기력한 삶도 하루 이틀이지 십 년, 이십 년을 잔뜩 쫄아서 맥없이 살라니… 때로는 위험한 호르몬 주사를 맞아서라도 새로삶을 살아보고 싶다. 새로운 기분을 만끽하고 싶다.

노인의 이런 마음을 모르는 세상은 나이가 들면 낙상사고를 조심해야 한다, 추운 날 돌아다니면 혈압이 올라 쓰러진다, 겨울에 예방주사를 맞지 않으면 독감에 걸려 목숨이 위험해진다고 끊임없이 겁을 준다. 은퇴 이후의 삶이 무서워진 원인 중 하나는 매스컴과 세간의 과도한 걱정과 배려다. 걱정도 지나치면 간섭이 되고 억압이 된다.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움츠러드는 것이다. 할 수 있는데 하지 못하게 만드는 것이다.

요즘 나의 관심사는 허벅지다. 허벅지는 신체근육의 30퍼센트가 밀집되어 있는 기관이다. 모든 인체활동의 진원지는 심장이 아니라 허벅지다. 관절의 움직임은 관절 주변을 둘러싸고 있는 근육의 양과 질에 비례한다. 허벅지 근육이 튼튼할수록 무릎 관절도 튼튼해진다. 퇴행성관절염을 예방하는 것은 기본이고 만에 하나 퇴행성관절염에 시달리고 있더라도 허벅지 근육을 늘려 통증을 감소시키는 것이 가능하다.

허벅지는 당뇨 및 혈관질병과도 직결되어 있다. 허벅지가 가느다란 사람은 당뇨병에 걸릴 확률이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몇 배나 더 상승한다. 허벅지 근육이 감소함에 따라 우리 몸의 당 대사가 나빠진다. 염증수치가 올라가고, 이 때문에 심혈관질환 같은 만성질환에 노출될 위험이 커진다. 겉보기엔 고도비만으로 보이는 씨름선수들이 당뇨병에 걸리지 않는 이유는 바로 굵은 허벅지 때문이다.

비만인구에서 노인층이 차지하는 비율이 빠르게 상승하고 있는데 살을 빼려면 큰 근육으로 지방을 태워 없애는 것이 최선이다. 보기 좋은 이두근과 유행하는 식스팩 복근은 쉽게 말해 찻숟가락이다. 윗몸일으키기를 수백 번 해도 뱃살은 빠지지 않는다. 옆구리나 등으로 이동할 뿐이다. 허벅지처럼 큰 근육을 키워야만 양동이로 지방을 퍼서 내다버리는 효과를 볼 수 있다. 짧은 시간 운동해도 허벅지 운동이 다이어트와 건강에 훨씬 더 도움이 된다는 이야기다.

특히 대퇴사두근으로 불리는 허벅지 앞쪽 근육이 중요하다. 여기가 약한 사람은 사소한 충격에도 무릎이 아프고 다리근육이 쉽게 파열되고 골다공증으로 이어진다. 보행에서도 대퇴사두근이 가장 중요한 역할을 맡고 있다. 노인낙상사고가 가장 자주 일어나는 공간이 욕실과 다용도실처럼 바닥에 물기가 있어 미끄러운 곳인데 멀쩡한 사람이 힘 한 번 못 쓰고 미끄러지는 이유는 무릎 안쪽 근육이 허약해 무릎뼈를 잡아주지 못했기 때문이다. 나이 들어서도 건강하게 걸어 다니고 싶다면 삼사십대의 허벅지근력과 이삼십대의 골밀도 수치를 유지해야만 하는 것이다.

나이가 들면 조금만 움직여도 힘들다고 하는데 정확히 말하면 나이 때문이 아니다. 피로는 에너지대사율과 직결된다. 에너지대사율이란 우리 몸이 필요로 하는 에너지를 생성하거나 축적하는 능력을 말한다. 에너지대사율이 높을수록 피로회복이 빨라지는데 에너지대사율은 근육량과 비례한다. 근육이 많을수록 에너지대사율이 높아지는 것이다. 그리고 우리 몸에서 가장 큰 근육은 바로 허벅지다.

내가 아는 분은 50대 중반에 당수치가 3, 400을 찍었다. 결국 인슐린주사를 맞았다. 재활의학과 의사는 허벅지 근력운동을 권유했다. 1년이 지나고 공복혈당이 121로 줄었다. 공복혈당수치에서 10퍼센트가 넘었던 당화혈색소도 6퍼센트로 돌아왔다. 당뇨병환자에서 정상인이 된 것이다. 자전거를 꾸준히 타면서 허벅지 근육이 증가했고 당뇨병에서 완치되었다.

허벅지 근육이 늘어날수록 인슐린저항성(에너지원으로 혈당을 사용하는 인슐린 작용을 방해하는 성질)이 개선된다. 당뇨병의 최고 명약이 허벅지인 것이다. 허벅지 근육이 늘어나면 당 대사가 활발해진다. 허벅지 근육에서 많은 양의 당을 소비해버리기 때문이다. 반대로 허벅지가 줄어들거나 허벅지 근육 대신 지방이 늘어나면 이 지방에서 염증세포가 만들어지고, 이 물질들로 인해 인슐린저항성이 발생한다. 당 대사에 문제가 생겨 심장으로 가는 혈관에 노폐물이 쌓인다. 심근경색, 뇌경색 같은 노인 심혈관질환의 위험도가 높아지는 것이다.

65세 이상 비만환자는 고혈압과 당뇨병이 없어도 근육감소만으로 심혈관질환의 발생확률이 76퍼센트나 높아진다. 사십대를 기점으로 허벅지 근육은 1년에 2퍼센트씩 줄어든다. 넓적다리 하나만 신경 써서 관리하고 운동하면 걷지 못해 쓰러지거나 어이없이 넘어져 다치는 일은 발생하지 않는다. 소파에 앉아서 무릎을 접었다 펴는 동작을 양쪽 번갈아 100회만 해도 훌륭한 허벅지 운동이 된다.

지나간 세월을 뒤돌아보니 내가 저지른 실수보다 모르고 게을러서 나를 위해 해주지 못한 일들이 더 아쉽다. 나는 거의 전 생애에 걸쳐 음주와 흡연을 누렸다. 알게 모르게 그 폐해를 경험했고 후회 중이다. 그에 더해 내 안의 보물인 허벅지를 지키고 관리하지 못했다는 아쉬움을 곱씹고 있다.

점점 더 가늘어지는 나의 두 다리에게 미안한 마음뿐이다.

<글 : 김욱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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