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에 모 상권을 찾았을 때에 타코 전문점을 들른 적이 있다. 그때 음식을 먹어보고 든 생각은 ‘이런 가게가 동네에 있다면 매일같이 들르겠다’였다. 그 지역의 음식점 가격과 비교했을 때 저렴한 편인데다 맛은 매우 훌륭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정말로 내가 사는 동네에 그 음식점이 들어섰다면 생각만큼 찾지는 않았을 것이고 아마 금방 동네에서 자취를 감추었을 것이다. 왜 그런지를 이해하고자 한다면 다음 이야기를 읽어보도록 하자.

수제 맥주라고 부르는 크래프트 맥주가 점점 대중화되면서 다양한 맥주를 찾는 사람들이 급격하게 늘어나기 시작했다. 이제 어지간한 중심상권의 맥줏집 중에서 수제 맥주를 팔지 않는 곳을 찾기가 더 어려워지는 현상까지 보인다. 실제로 수제맥주 마니아들은 여기에 아낌없이 돈을 쓴다. 그러나 이런 마니아들도 자신이 사는 동네에서나 마트를 가면 4캔 9900원 행사를 우선적으로 살펴본다.

바깥에서 맥주를 사 먹는데 들이는 예산만큼을 마트에서 맥주를 살 때 들인다면 바깥에서 사 먹는 것보다 훨씬 다양한 맥주를 많이 마실 수 있다. 그러나 대부분은 번화가의 수제 맥주 전문점에서 돈을 쓰던 배포를 마트에서는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왜 같은 사람이 동류의 상품을 구매하는데 어디에서 사느냐에 따라 그 배포가 달라지는 것일까?

이 두 가지 현상을 이해하기 위해선 2017년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인 리처드 세일러가 주장한 심리적 계좌(Mental Accounting)의 개념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세일러는 사람들이 자신의 마음속에서 정한 용도에 따라 서로 다른 계좌를 운용하고 있고 그 계좌에 따라 돈을 쓴다고 이야기한다.

이 이해를 위해 대표적인 실험을 소개하고자 한다. 연극 티켓이 10달러의 가격이라고 하자. 그룹을 둘로 나누어 한쪽은 10달러를 주고 산 티켓을 잃어버린 것으로 하고 다른 그룹은 오는 길에 10달러를 잃어버렸다고 가정했다. 이 경우 두 그룹에서 티켓을 새로 사겠다는 사람의 비율에 서로 차이가 있을까?

금액으로 보자면 양쪽 다 10달러의 손실이 발생한 것이다. 따라서 우리가 10달러의 가치를 동일하게 받아들인다면 양쪽 그룹 간의 티켓을 새로 사겠다는 사람의 비율 차이는 나타나지 않아야 정상이다. 그러나 실험 결과 티켓을 잃어버린 사람들은 54%가 새로 티켓을 구매하겠다고 답했으며 돈을 잃어버린 사람들은 88%가 새로 구매하겠다고 답했다.

이러한 차이가 발생하는 것은 사람들이 연극 티켓용 예산이라는 심리적 계좌를 만들어서 운용하기 때문이다. 티켓이 10달러이므로 사람들의 마음속 연극 관람용 예산은 10달러로 정해져 있다. 그런데 티켓을 잃어버린 사람들은 티켓을 두번 구입하는 셈이 되기에 예산이 2배가 되는 부담이 발생한다. 그러나 돈을 잃어버린 사람들은 아직 티켓을 구입하기 전이므로 다른 예산에서 손실이 발생했을지언정 티켓 예산에는 아무런 영향이 없다. 그래서 티켓을 잃어버린 사람보다 더 높은 비율로 티켓을 새로 구입하겠다고 답을 한 것이다.

 

자 이제 심리적 계좌의 개념을 이해했다면 왜 위치에 따라서 동류의 상품이라도 다른 소비패턴이 나타나는지를 이해할 수 있다. 번화가를 방문하는 사람들은 소비를 통해 즐거움을 얻고자, 유흥을 즐기고자 하는 사람들이다. 따라서 이를 위해 충분히 많은 예산을 편성한 ‘번화가 방문용 심리적 계좌’를 적용한다.

동네 주변과 마트라는 공간을 생각해보자. 우리는 가급적 동네 주변과 마트에서는 돈을 아끼려고 한다. 이는 번화가가 즐기기 위해 찾는 공간인 것과 달리 동네와 마트는 우리의 생활을 위한 공간이고 여기에서의 소비를 우리는 ‘즐거움으로서의 소비’가 아닌 ‘생활 비용’으로 받아들이는 경향이 있다. 바로 이러한 심리적 계좌의 차이가 공간에 따른 편성 예산의 차이를 부르는 것이고 맥주라는 동종의 상품을 소비함에도 불구하고 소비 장소에 따라 전혀 다른 소비 패턴을 보이는 것이다.

이제는 처음 예를 들었던 타코 전문점의 이야기로 다시 돌아와야겠다. 그 가게가 정말로 동네에 들어섰다면 망할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한 것은 그 가게의 가격이 번화가의 심리적 계좌를 기준으로 봤을 때 저렴하고 좋은 가게였기 때문이다. 심리적 계좌는 우리의 생각 이상으로 소비에서 큰 차이를 만들어낸다.

<글:김영준 '골목의 전쟁'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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