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슬 지루해지기 시작했다. 우리나라의 사계절 중 겨우살이가 힘든 건 추위 때문이나 뭘 하든 ‘본격적인 시작은 봄부터’라는 근본 없는 지루함도 한 몫 한다.

하지만 더 이상 그 지루함을 참을 수 없어 추위라면 딱 질색인 소음인의 몸을 이끌고 밖으로 뛰쳐 나갔다.

안국동 티쿱 3층 갤러리에서 귀한 전시를 한다기에 갔는데 마침 방문한 10일 오후3시에 이번 전시 소장자와의 만남이 있어 전시장을 둘러 본 후 참석했다.

장인식 교수님의 개인소장 자사호(자사라는 광물질 점토로 만든 차를 우려내는 차도구) 전시로 <호중일월(壺中日月) 호외청풍(壺外淸風)>이라는 전시명이었다. 뜻을 찾아보니 ‘차호 안에는 세월이, 차호 밖으로는 맑은 바람이!’ 라는 의미란다.

소장자인 장인식 교수님에 의하면 전시된 150 여 점의 자사호들은 주로 2004년부터 2008년까지 중국 현지와 한국정품관을 통해 구매한 것으로, 구입 후 매일 차호를 달리하며 3~4시간씩 차를 우려내어 드셨다 한다.

각 차호들은 대체로 500~700cc 이상으로 용량이 큰 편이었다. 오랜 세월 차를 우려내며 양호(차호를 닦고 건조하는 등의 관리를 의미) 또한 정성스럽게 잘 하신지라 각각의 차호에서 자연적으로 우러나오는 빛깔은 그야말로 우아하고 고급스러움 그 자체였다.

그리고 전시된 자사호 중에는 중국에서도 몇 안되는 종신대사(우리로 치면 국가지정 종신 명인, 명장에 해당) 작품도 있어 깜짝 놀랐다. 대체 요즘 가격으로 치면 얼마일까 내심 궁금하기도 했다.

오랫동안 함께 하며 가까이서 보고 또 보며 귀하게 여기던 자사호들을 교수님이 강의하시던 대학박물관에 기증할까 고민하시다 차(茶)를 사랑하고 즐기는 분들에게 선보이고 이를 아껴 줄 수 있는 분들에게 출가시키기 위해 이번 전시를 허락하셨단다. 교수님께 전시된 자사호 외에 더 소장하고 계신 것이 있냐고 외람된 질문을 드렸더니 “없어요. 집에 몇 개 있는 건 어딘가 조금 깨지거나 흠 있는 거예요.” 마치 이제는 그거면 충분하다는 듯한 미련 없는 답변을 하셨다.

시작은 개인의 우연한 경험으로, 세월(日月)이 흐르니 이를 소중히 여기는 사람들에게는 대단한 작품과 가치를 보여주는 세월이 흐름(老)을 보여주는 것 같아 묘하게 신선했다. 그리고 불현듯 내가 어렸을 때 아버지가 꽤 오랫동안 알 수 없는 돌들을 모아 집 한 켠에 진열해 놓으셨는데 대체 그 돌들은 어디에 갔을까 하고 잠깐 궁금해지기도 했다.

이번 전시는 2월28일(목) 까지 한국문화정품관 3층 갤러리에서 진행된다.

항상 그렇듯 입장료 무료.

봄이 그립다. 꽃 향이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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