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년 12월 정부는 근로자의 퇴직급여 수급권을 보호하고 노후생활비 재원을 마련하겠다는 취지로 퇴직연금제도를 도입했다.

지난해 연말 기준으로 40만 개에 육박하는 사업장이 이 제도를 도입했고 적립금 규모는 187조 원을 넘어섰다고 하니 13년 세월이 흐르는 동안 괄목할 만한 성장을 했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퇴직연금 적립금 자산 운용에는 아쉬움이 남는다.

근로자들은 퇴직연금 자산을 운용하면서 두 가지 ‘90% 덫’에 걸려 있다.

우선 전체 퇴직연금 적립금 중 90%가량이 원리금보장상품과 대기성 자금에 맡겨져 있다. 지난해 연말 기준으로 전체 퇴직연금 적립금 187조 원 중 163조 원(86.9%)은 원리금 보장상품으로 운용되고 있고, 운용 지시를 하지 않아 투자 대기 중인 자금은 62조 원(3.3%)이 넘는다. 노후생활비 재원으로 활용해야 하는 퇴직연금의 특성을 감안하더라도 수익률이 낮은 상품 편중률이 90%이면 상당히 높은 수치라고 할 수 있다.

근로자의 무관심도 문제다.

대다수 근로자들이 처음 퇴직연금에 가입할 때 퇴직연금 사업자(금융기관)가 제시하는 상품 목록과 설명에 의존해 운용 지시를 한 다음 변경하지 않는 소극적인 운용 행태를 보인다.

금융당국에 따르면 2017년 기준으로 전체 퇴직연금 가입자 열 명 중 아홉 명(90.1%)이 운용 지시를 전혀 변경하지 않았다고 한다. 웬만해선 한번 정한 것을 바꾸려 하지 않는 것을 ‘현상유지편향’이라고 하는데, 퇴직연금 운용에서도 이 같은 편향성이 나타난 것이다.  

# 운용 제대로 안 하면 수익 손해

이유는 여러 가지다. 바꿀 수 있다는 사실 자체를 모르거나 그냥 귀찮아서 방치해두는 경우가 많다.

변경했을 때와 하지 않았을 때를 비교해 어느 쪽이 나을지 몰라 망설이다 시간만 보내는 경우도 있고, 괜히 바꿨다가 잘못될까 두려워 내버려 둔 경우도 있을 것이다. ‘기왕에 한번 결정했으면 됐지, 변경할 필요 있겠어?’라고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 적립금의 90%가 맡겨져 있는 원리금 보장상품을 예로 들어보자.

정기예금과 같은 원리금 보장상품에는 만기가 정해져 있다. 따라서 가입자는 만기가 도래할 때마다 만기자금을 어디에 투자할 것인지 정해야 한다. 만기 때 새로이 운용 지시를 하지 않으면, 동일한 금융기관의 동일한 금융상품에 재예치된다.

문제는 금리다. 자동 재예치될 때 금리는 최초 가입 당시 것이 아니라 재예치 시점의 금리가 적용된다. 이렇게 되면 처음 가입했을 때보다 금리가 떨어졌을 때 문제가 불거지게 된다.

자동 재예치가 됐는지 모르는 근로자는 처음 가입할 당시 높은 금리로 적립금이 운용되고 있겠거니 생각하겠지만, 재예치될 때마다 금리가 떨어져 실제 운용수익은 이보다 낮을 수밖에 없다.

그나마 만기 때 재예치가 되면 다행이다. 만기 때 같은 상품이 없으면 대기성 자금으로 운용된다. 만기자금이 단기 금융상품(MMF, MMDA)이나 현금 자산(콜금리, CD금리 적용)에 예치된다는 얘긴데, 이렇게 되면 기대수익과의 괴리는 더욱 커진다.

예를 하나 들어보자.

홍길동 씨가 2015년 12월에 퇴직연금 적립금을 A은행의 1년 만기 정기예금(2.3%) 에 맡겼다고 치자. 1년이 지나 만기가 도래했을 때, 홍씨가 운용 지시를 하지 않으면 다시 A은행 1년 만기 정기예금에 예치된다. 찾아보면 더 좋은 금리를 주는 정기예금이 있는데도 말이다.

다시 1년이 지나 2017 년 12월에 만기가 도래했다. 그런데 이때는 퇴직연금 사업자가 제시하는 상품 목록에 A은행 정기예금이 없어서 대기성 자금으로 남겨졌다.

만기가 도래할 때마다 금융기관에서 운용 지시를 해야 한다고 알리고는 있지만, 현상유지편향이 쉽게 바로 잡힐 것 같지는 않다.

바꿀 수 없다면 거꾸로 이를 활용하는 방법은 없을까?

올해 1월 정부는 퇴직연금 내 원리금 보장상품 운용 지시 방법을 개정했다. 기존 방식에 ‘특정금전신탁’ 방식을 추가했는데, 시행 시기는 금융기관마다 다소 차이가 날 수 있다.  

특정금전신탁이란 가입자가 운용상품을 직접 고르지 않고, 금융회사에 운용지침을 주는 것이다.

이때 가입자가 지정할 것은 크게 4가지다.

먼저 투자 상품의 종류부터 정해야 한다. 원리금 보장상품에는 예·적금, 금리연동형 보험, 이율보증형 보험, 발행어음, 표지어음, ELB, RP 등 다양하다.

상품은 복수로 지정할 수 있다.  상품을 선택한 다음에는 만기를 정해야 하는데, 5년 이내 범위에서 연 단위로 정하면 된다. 다음은 상품을 제공하는 금융기관의 신용도와 운용 비율을 정하면 된다.

가입자의 운용 지시가 끝나면 금융기관은 금융상품 만기가 도래할 때마다 가입자가 지정한 범위 내에서 가장 높은 금리의 금융상품을 찾아서 만기 금액을 재예치해야 한다.

이렇게 되면 만기 때 이전과 같은 금융상품에 재예치하는 것보다는 수익률을 개선할 수 있다.

 

# TDF, 생애주기 고려해 자산 배분

앞서 홍 씨가 특정금전신탁 방식을 선택하면서 신용등급이 AA-에 해당하는 은행의 1년 만기 정기예금 중 금리가 가장 높은 곳에 적립금을 운용해달라고 했다고 가정해보자.

이 경우 가입자가 만기 때 운용 지시를 하지 않더라도, 운용지침 내에서 금리가 가장 높은 상품을 찾아 2015년에는 A은행, 2016년에는 B은행, 2017년에는 F은행 정기예금에 투자된다.

특정금전신탁 방식을 활용하면 금융상품을 특정해 운용할 때보다 수익률을 개선할 수 있다. 문제는 특정금전신탁 방식은 원리금 보장상품에만 가능하다는 것이다. 요즘 같은 저금리 시대에는 수익률을 크게 개선하기 어렵다.

정기예금 이상의 수익을 얻으려면 결국 펀드와 실적배당 상품을 편입하는 방법밖에 없다.

물론 펀드에 투자한다고 하더라도 관리하지 않고 장기간 방치해두면 좋은 성과를 얻을 수 없다. 입사부터 퇴직까지 장기간에 운용하는 퇴직연금의 특성상 경제 환경과 금리 변화, 은퇴까지 남은 기간 등을 고려해 주식과 채권 간 비중을 적절하게 조정해야 한다.

퇴직연금 가입자의 이 같은 수고를 덜어주기 위해 고안된 금융상품이 ‘타깃데이트펀드(TDF, Target Date Fund)’다.

TDF는 생애주기를 고려해 펀드가 알아서 자산 배분을 해준다.

투자자가 운용 지시를 하지 않아도 은퇴까지 남은 기간을 고려해 펀드가 알아서 주식 등 위험자산 비중을 줄여나간다.

은퇴까지 남은 기간이 많은 청년기에는 주식 비중을 높게 가져가다가 은퇴가 다가올수록 채권 비중을 늘려나가는 방식이다.

물론 TDF도 주식 등 위험자산에 투자하기 때문에 손실을 볼 수 있다. 따라서 가입에 앞서 TDF를 운용하는 회사가 어디인지, 어떤 지역과 주식에 투자하는지 꼼꼼히 살펴야 한다.

그리고 자신의 은퇴 연령에 맞는 펀드를 골라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펀드 명칭 뒤에 붙은 숫자를 살펴야 한다.

TDF 이름엔 2020, 2025, 2030, 2035, 2040, 2045 같은 숫자가 붙어 있는데, 이는 예상 은퇴 시점을 나타낸다.

가입자가 2045년에 은퇴할 예정이면 펀드 이름 뒤에 2045가 있는 것을 선택하면 된다. 그리고 앞으로 5~6년 내에 은퇴할 예정이면 펀드 이름 뒤에 2025 가 있는 것을 고르면 된다.

일단 펀드를 선택하고 나면 가입자는 별도로 운용 지시를 하지 않아도 된다.

펀드가 은퇴까지 남은 기간을 고려해 펀드가 자동으로 안전자산과 위험자산 간 비중을 줄여나간다.

이 점에서 TDF는 자산 관리에 많은 시간과 노력을 쏟기 힘든 근로자에게 적합하다.  

<글: 김동엽 미래에셋은퇴연구소 은퇴교육센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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