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茶) 문화가 경쟁력이 된 자사(紫砂)차호(茶壺)의 고향

이싱(Yixing, 의흥 宜兴)이란 지명은 우리에게 익숙하지 않은 중국지명이다. 우리나라 기준으로 보면 제주도 아래 중국 남경(난징) 하단에 위치한 곳으로 남경(난징)공항에서 이싱(Yixing)까지 고속도로로 1시간~1시간20분 정도 소요된다.

1. 지리적 위치:

태호 라는 호수(서울면적의 4배)가 있어 평상시에도 습도가 높아 뿌해 보일 때가 많다고 한다. 이싱(Yixing) 남쪽은 안휘성과 연결돼 있고 예전에는 육지였으나 때로는 바다가 덮치고 장강이 지나고 있어 민물퇴적층이 형성됐다. 오랜 세월 동안 육지와 바다가 반복되며 민물습지가 만들어졌고, 황토산 등에서 채취한 자사는 점성을 갖게 되어 차호로 만드는데 적합한 재료가 됐다고 한다.

2. 환경적 여건:

춘추전국시대 범여(도자기의 비조)는 전쟁이 끝나자 서시를 다시 불러 들여 이곳에서 함께 도자기 비즈니스를 했다고 전해진다. 항주와 남경에도 운하를 이용해 물건을 공급했다고 한다.

중국의 강남이라 불리는 곳은 남경.상해.항주로, 그 중 남경에 위치한 이싱(Yixing)은 중국 2800개 현급 시 중 하나지만 중국내에서도 관료들이 은퇴 후 머물기를 원하는 선호도 1위 지역으로 꼽히는 곳이다. 그 만큼 풍요롭고 날씨 또한 따뜻한 곳이다. 

풍수지리상으로도 중국내 길지(吉地) 탑3 안에 든다고 한다. 이를 반영하듯 과거에는 동파 소식이 세운 동파서원을 통해 다수의 장원급제자를, 현대에는 8000 여명에 달하는 이싱(Yixing)출신의 대학교수를 배출시켰다.때문에 이싱(Yixing)이 없었으면 중국의 대학이 돌아가지 않았을 거라는 우스개 소리가 나올 정도라고 한다.

당나라때 양선 이라 불리기도 한 이싱(Yixing)은 아직도 봉건적 지주제문화가 남아 있는 곳으로 여기서 사업하려면 사회주의+자본주의+봉건주의에 대한 이해가 있어야 가능하다고 한다. 

이싱(Yixing)에는 범여 후손들인 범씨 집성촌이 있고 범씨 가문의 대표공작실인 범가호장을 통해 많은 작가와 작품이 제작-전시-판매되고 있었다.
 
범가호장 1층 공작실에서 자사차호제작과정중 통기성과 보온성을 동시에 갖은 자사차호의 특징이라고 할 수 있는 중층구조 시연과정을 보았다. 이후 범가호장 내에 전시된 작품 등을 구경하며 마음에 드는 차호를 구입했다.

통촉로(촉산으로 통한다는 의미)를 비롯 이싱(Yixing) 도시 전체가 말그대로 가가호호 간판을 걸고 제작과 판매를 하는 수 많은 자사차호 공작실(우리나라의공방)로 그득했다.

3. 차(茶)와 도자의 역사:

차의 시작은 운남, 사천, 귀주다(사실 예전에는 중국이 아니었던 곳이다). 차를 정리한 것은 당나라 유구로, 그 중심은 강남의 한족이었다. 그 당시에는 주로 녹차위주로 즐겼다. 명나라 주원장을 거쳐 명말 청초에 다양한 차(우롱,홍차 등)들이 세팅되고, 청 중기 이후 운남 보이차가 유명(황실 납품)해진다. 명나라 꿍춘(도호비조)에 의해 발효도가 높은 차에 적합한 자사를 차호에 적용해 만들면서 차를 주로 즐겼던 강남 사대부 중심으로 폭발적인 수요가 생기며 자사차호는 비약적인 발전을 하게 된다.
 
1850년 아편전쟁으로 청나라가 쇠락하며 영국 등 유럽이 차 문화 주도하게 되고 이후 중국 공산화로 차문화는 후퇴하게 된다. 1970년대 이후 재정비되며 최근 또 다른 중흥기에 맞으면서 우리나라를 포함 차와 차호에 대한 수요 및 저변확대를 꾀하고 있다.

그 외 죽해(대나무의 바다. 영화 `와호장룡` 촬영지중 한 곳)와 오관중예술관 등을 둘러 보았다. 무엇보다 저녁 6시면 택시가 운행을 하지 않을 정도로 집마다 2대 이상의 고급차를 보유하고 있는 놀랄만한 경제적 여유와 늦은 시간에도 숙소근처와 시내를 도보로 활보할 수 있었다는 점이 몹시 인상적이었다. 중국 전역에 걸쳐 CCTV로 도배하다시피 할 정도로 안전을 위해 소요되는 예산이 100조에 달한다고 한다.

현금을 내는 사람은 외국관광객인 것이 티 날 정도로 QR위쳇시스템이 발달해 있었다. 이 시스템이 탑재된 모바일만 있으면 결제되는 게 흥미로웠으나 다른 한편으로 사회주의였기에 이같은 획일적인 결제수단이 빠르게 정착했을 것으로 보인다.

'백문이 불여일견'이었던 이번 답사는 한류라 불리우는 문화콘텐츠와는 또다른 차(茶)문화를 경쟁력으로 구축한 이싱(Yixing)을 통해 문화콘텐츠의 파급력과 무궁한 발전력에 대한 안목과 시야를 넓히는 경험의 장이었다. 

저작권자 © 자투리경제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