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존과 소통(CO-Exist & COMmunication)

음악

[자투리경제=김봉균 SNS에디터] 

50s : 90년대는 발라드, 힙합, 레게까지 모든 장르가 공존하던 한국가요의 르네상스였다. 듀스는 세련된 사운드와 패션, 파워가 넘치는 춤을 보여주던 ‘명불허전’ 듀오였다. 유독 남성 팬들의 충성도가 높은 힙합 듀오이기도 했다. 

 

 

 20s : 당시 유행하던 곡들은 지금까지도 활발히 리메이크 되고 있다. 2014년에는 아이유의 리메이크 앨범 ‘꽃갈피’, 10cm 가 리메이크 한 <쿨 – 애상>은 큰 인기를 끌었다. 또한 ‘응답하라 시리즈’, ‘투유 프로젝트 – 슈가맨’ 등 TV 프로그램을 통해서도 당대 음악이 꾸준히 리마인드 되고 있다. 뿐만 아니라 <김광석 – 이등병의 편지>는 군 입대를 앞둔 친구의 송별식 노래로, <무한궤도 – 그대에게> 는 응원가로 지금까지도 불려지고 있다. 비록 20~30년의 세월이 흘렀지만 당시의 노래가 여전히 인기를 끌고 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영화

 20s : 할리우드 영화가 극장을 뒤덮었다. 지난 10년 간 1000만 이상 관객을 동원한 21개 작품 중 7개 작품이 할리우드 영화였다. 미국 이외 국가는 없었다.  

 

 7개 작품 중에서도 화려한 액션이 도드라지는 마블의 ‘어벤져스’ 시리즈가 3자리를 차지했다. 마블 스튜디오는 2008년 개봉작 ‘아이언맨’을 시작으로 10여년간 20편이 넘는 슈퍼히어로 영화를 제작해왔다. 마블의 새 영화가 개봉하는 날이면 팬들은 가장 먼저 상영하는 영화관을 찾아가겠다고 아우성이고 아직 영화를 보지 못한 사람들은 스포일러를 피하기 위해 안간힘을 쓴다. 지난 10년은 가히 마블의 시대라 해도 과언이 아니였다.  

 

 한편 디즈니의 ‘겨울왕국’은 1, 2편 모두 1000만 이상 관객을 동원했다. ‘겨울왕국’은 히트곡 ‘Let It Go’를 남기며 전국민적인 사랑을 받았고 속편 ‘겨울왕국 2’도 OST ‘Into the Unknown’ 이 큰 인기를 끌고 있다. 특히 ‘겨울왕국 2’는 ‘어벤져스 : 엔드게임’에 이어 역대 외화 흥행 2위에 오르며 애니메이션 영화가 어린이의 전유물에서 어른들까지도 즐기는 컨텐츠로 재인식 되고 있다. 

 

 50s : 90년대 상당기간동안 홍콩 영화가 대세였다. 고난도의 감각적인 촬영기술과 다양한 이야기 소재, 그리고 세련된 OST로 구성된 대표적인 문화콘텐츠였다. 특히 천녀유혼, 동방불패 등 무협 판타지물 시리즈의 인기가 대단했다. 

영웅본색<감독 오우삼 / 출연 적룡, 장국영, 주윤발> 

 1987년 처음 상영 후 재상영 등을 통해 인기폭발. 특히 주윤발의 검은 선글라스와 코트자락 휘날리며 입에 문 이쑤시개 장면은 대단한 유행을 일으켰다. 홍콩느와르(범죄영화)장르의 대표영화로써 장국영이 부른 주제가(당년정) 도 유명했다. 

 

아비정전<감독 왕가위 / 출연 장국영, 장만옥, 유덕화, 장학우, 양조위> 1990년 개봉  

 단순한 청춘들의 사랑 영화라 하기엔 파격적인 편집기술과 감각적인 시-청각적 효과로 다양한 해석이 가능한 영화였다. 장국영이 거울을 무대 삼아 Maria Elena의 음악에 맞춰 맘보춤을 추는 장면은 명장면 중 하나. 

 

동방불패<감독 정소동 / 출연 임청하, 이연걸> 1992년 개봉 

 홍콩의 대표적인 무협 판타지. 후일 황비홍 시리즈로 더욱 유명해진 이연걸과 남장 여배우 임청하의 보이시한 외모가 큰 인기를 끌었다. 

 

중경삼림<감독 왕가위/출연 임청하,양조위,금성무,왕페이> 1995년 개봉 

 홍콩을 배경으로 한 네 청춘들의 사랑과 이별, 치유에 대한 영화. 마마스 앤 파파스 의 ‘캘리포니아드림’, 왕페이가 부른 <몽중인>등의 OST가 유명하다. 

 

첨밀밀<감독 진가신/여명, 장만옥> 1997년 개봉

 중국 본토에서 각자의 꿈을 위해 홍콩으로 건너 와 만난 두 젊은이의 공통점은 가수 등려군을 좋아한다는 것. 서로 사랑하게 되지만 의도치않은 헤어짐 끝에 10년 후 미국에서 등려군의 사망소식을 듣고 한 가게에서 다시 조우 한다는 내용. 등려군의 대표곡‘첨밀밀’, ‘월량대표아적심’ 등이 영화에 나온다. 

 

오렌지족 - 50s 

26살 나는 학동사거리를 걷고 있었다. 뒤에서 누군가가 말을 걸었다. 

“…저…XX건물이 어디에 있나요?” 

“요 앞 작은 사거리에서 좌회전하시면 됩니다.” 

나는 대답한다. 

“…저, 타실래요?” 

‘이 어린 학생이 말로만 듣던 오렌지?’ 순간 나도 모르게 짜증이 치밀며 손을 휙 휙 내저으며 

“가세요, 갈 길!” 

…훗!  

 1988년 서울올림픽 이후 해외로의 여행 자유화가 실시되고 외형적인 경제 발전으로 신인류라 불리는 새로운 문화와 가치관으로 무장한 젊은 세대가 등장하였다. 특히 그 당시 서울 강남구 압구정을 중심으로 해외 유학파들에 의해 패션 및 문화가 전파되며 강남문화를 상징하는 곳이 되었다. 하지만 당시 사회정서가 수용하기에는 워낙 파격적이어서 부정적인 시선과 평가가 많았다. 

오렌지족 입장을 사양한다는 서울랜드 안내문, 출처=네이버사진

 

인터넷 - 20s

 지금의 20대의 큰 특징을 하나 꼽으라고 한다면 ‘인터넷’을 꼽고 싶다. 우리 세대는 어렸을 적부터 인터넷을 ‘달고’ 살았다. 어려서부터 컴퓨터로 온라인 게임을 했고, 학교에 들어가서는 컴퓨터와 인터넷 사용법을 익혔다. 스마트폰이 보급되면서 길 가면서도 인터넷을 할 수 있게 되었고 SNS로 일상을 공유하고 오래된 친구들과도 편하게 꾸준히 연락할 수 있게 되었다.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유튜브 등 글로벌 플랫폼이 큰 인기를 끌며 국가의 장벽이 허물어지며 해외 문화가 실시간으로 광범위하게 국내에 들어왔고, 동시에 우리 문화도 퍼져갔다. 마이너부터 메이저까지 수 많은 문화가 글로벌 플랫폼이라는 파도를 타고 전 세계를 휩쓸기 쉬운 환경이 만들어진 셈이다. 젊은 층을 중심으로 해외 문화가 들어온다는 점은 크게 예전과 다른 바 없지만 인터넷과 스마트폰의 보급으로 속도가 더욱 빨라지고 범위도 넓어질 수 있었다. 

 한편 인터넷의 익명성은 사회 문제에 대한 토론의 장이 열릴 수 있게 해주었다. 앞선 세대의 ‘다음 아고라’처럼 지금 세대는 SNS와 또 다른 인터넷 게시판을 통해서 자신의 의견을 표출할 수 있었다. 새로운 토론의 장에서는 우리 사회의 잘못된 점에 대해 열띤 토론과 공론화가 이루어졌다. ‘상사의 지시가 부당한 것 같다.’ , ‘선생님이 잘못된 언행을 일삼는다.’ 와 같은 이야기가 꾸준히 오갔고 그 결과 ‘갑질’이라는 신조어가 등장하고 ‘스쿨미투’ 바람이 불 수 있었다. 마찬가지로 인터넷이 젊은 층의 새로운 가치관 확산에 속도와 범위 면에서 큰 기여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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