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존과 소통(CO-Exist & COMmunication)

 

[자투리경제=김봉균 SNS에디터]

 

50's : 2020년 현재 50대 들의 부모세대는 1930년대~1940년대 출생했다. 집안마다 보통 6~8명의 남매나 형제가 있었다.

사진 속 삼형제는 지방출신으로, 왼쪽부터 둘째 아들은 일찍이 서울로 상경해 사회인으로, 큰 아들은 고향에서 공무원으로, 막내아들은 학교와 군생활 후 70~80년대 중동 건설 붐에 따라 해외에서 근무하며 자녀들을 교육시켰다.

 

박씨 삼형제, 공항에서 막냇동생 중동출국 전에
박씨 삼형제, 공항에서 막내동생 중동출국 전에
태어나 보니 흑백시절
태어나 보니 흑백시절
사촌들과 옹기종기 모여
사촌들과 툇마루에 옹기종기 모여
학년당 16반까지, 한 반당 70명
학년당 16반까지, 한 반당 70명

 

6월 반공포스터행사
6월 반공( 反共) 포스터 행사
중1, 임원들 군부대 방문
중1 임원들 군부대 방문
외고, 자사고 없던 여고시절
외고 · 자사고 없던 여고시절

이렇게 세 명의 군 출신 대통령 시절이 막을 내리고 문민정부가 시작되었다.

 

1. 1993년 김영삼 대통령

- 1993년 금융실명제 실시

 

1993년 8월 12일 오후 7시 45분, TV를 통해 대통령 긴급 발표가 있었다.

지금은 너무나 당연한 이야기인 ‘모든 금융 거래는 당사자인 본인의 이름으로 한다’는 내용이다.

 

-1997년 11월 IMF 경제위기

 한 순간에 수 많은 기업들과 가정이 무너졌다. 800원대 였던 미 달러 환율이 2000 원대 까지 오르며 온 나라가 대체 왜 이지경이 되었는지 영문도 모르며 고통의 나락에 빠졌다. 그 당시 남편 회사도 몇 개월은 전혀 급여가 나오지 않았다. 다행히 몇 개월 뒤에는 일부가 나왔으나 내 월급으로 돌쟁이 큰 애의 양육비와 남편 차 할부금(남편이 결혼 전 6번 정도 내고 12번은 결혼 후 내 월급으로 나머지 회차는 공동생활비로 납부, 남편 출퇴근 전용 차) 등 고정생활비 등을 충당하며 1년 정도 힘들게 버텼던 기억이 있다. 하지만 다른 가정의 경제적 고통에 비하면 내 힘듦은 아무것도 아니었다. 기업들의 줄도산으로 사장님에서 서울역 노숙인으로, 경매로 넘어 간 집에서 쫓겨난 온 가족이 뿔뿔이 흩어져 어렵게 생활하는 뉴스가 연일TV에서 나왔다. 정말 대한민국이 다시는 일어설 수 없을 것 같은 분위기 그 자체였다.

 

2. 1998년 김대중 정부

- 1998년 1월 금모으기 운동

 '제2의 국채보상운동' 이라고도 했다. 국민들이 집집마다 애기 돌 반지부터 소유하고 있는 금들을 아낌없이 KBS방송국 또는 지정장소에 내놓았다. 나도 그 때 큰 애 백일 반지를 내놓았다.  마치 일제강점기 만세운동에 참여하는 구국의 분위기 같았다. 그리고 2001년 대한민국은 IMF구제금융을 졸업했다.

 

 온 국민이 IMF 경제위기로 힘들고 지쳐있을 때 대한민국에 힘을 준 소식이 미국으로부터 들려 왔다.

 

- 1998년 여름 박세리 LPGA 우승

 

 박세리 선수가 마지막18번 홀에서 맨 발로 연못에 들어가 침착하게 공을 필드로 올린 후 연장전에서 우승한 모습을 지켜본 국민은 모두가 뜨거운 눈물을 흘렸다. 어려움과 아픔에 눌려있던 감정이 한꺼번에 분출했었다. 그 어떤 정치인도, 그 어떤 경제인도 주지 못했던 ‘다시 한번 그리고 끝까지’ 란 재기의 의지를 온 국민에게 선사한 것이다.

 

- 햇볓정책

 김대중 정부시절 대표적인 정책 중 하나인 '햇볕정책'.  기존의 강경대응 모드였던 대북관계에서 화해와 포용의 자세로 남북한이 교류와 협력을 하자는 정책이다. 이와 관련, 故(고) 정주영 명예회장이 500마리의 소떼를 이끌고 판문점을 넘어 가는 장면이 매우 인상적이었다.

 

- 대한민국 국민임이 자랑스러웠던 2002 월드컵 4위

 

3. 2003년 한국의 고질적인 권위주의적인 문화 극복에 힘쓴 노무현 참여정부시절을 지나

 

4. 2008년 이명박 정부 ‘미국산 최고기 수입 반대 촛불집회

 한미 쇠고기 협상(30개월 이상의 쇠고기 수입 및 당시 세계를 공포에 떨게 했던 광우병이 미국에서 추가로 발생하더라도 수입 금지 조처를 취할 수 없다는 내용 포함)에 반대하는 국민들이 자발적으로 청계광장에 촛불을 들고 모였다.

 

5. 2013년 출범한 박근혜 정부

 

2017년 2월 아빠와 아들은 광화문 세종대왕 동상 앞에 섰다
2017년 2월 아빠와 아들은 광화문 세종대왕 동상 앞에 섰다

그리고 엄마는...

엄마의 부모세대와 달리 소속 당에 구애 받지 않는다. 당파 초월이다. 누가 더 프로 일꾼 답게 헌신하고 있는지, 지난 선거에서 약속했던 공약내용을 체크하고 실현 가능한 주요 사안에 기반한 공정한 정치공약인지 살핀다. 그리고 새로운 젊은 리더십을 기대한다. 만약 '환경+ 청년' 조합이 나오면 무조건 뽑을 수도 있다.

 

2016년 9월 올라퍼 전시회, 리움

“항상 깨어있는 눈으로 세상을 바라볼 것. 두번 지기는 싫으니까.”

영화 국가부도의 날에서 극 중 한팀장으로 분한 김혜수 대사

 

 

20's : 지금의 20대는 문민 정부, 국민의 정부, 참여 정부라 불리우는 김영삼, 김대중, 노무현 정부 시기에 어린 시절을 보냈다. 32년에 걸친 군사 정권이 막을 내리고 본격적으로 민주주의가 싹을 틔우기 시작했다. 한편 IMF의 그늘에서 어린 시절을 보내야 했던 세대이기도 하다. 집안이 휘청이는 모습을 어린 눈으로 목격했거나, 태어났더니 집안이 풍비박산 나있는 일도 잦았다. IMF의 여파가 가시며 찾아온 새 천년에는 평화의 물결이 일었다. 남과 북의 정상이 평양에서 만나고, 개성공단 등 민간 교류도 활발해지며 ‘나는 커서 군대를 안 갈 것만 같은’ 분위기가 조성되었다. 그러나 평화도 잠시, 금강산 관광객 피격 사건, 연평도 도발, 계속되는 핵 실험으로 다시 남과 북의 분위기는 나빠지기 시작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미국 발 리만 브라더스 사태가 찾아왔다. 제 2의 IMF 사태가 되나 했지만 그때 만큼의 파장이 커지지는 않았다. 그러던 2016년, 박근혜 전 대통령의 헌정 농단 사태로 촛불을 들고 거리에 나왔다. 어쩌면 지금의 20대에게 정치사적인 터닝포인트가 된 사건 일지도 모르겠다. 그 뒤를 이어 문재인 정권이 들어서고, 3년 여가 흘러 2020년에 이르렀다.

 단순한 정치사적 흐름을 이야기 하기에는 '정치'는 전 세대가 공유하는 문제이기 때문에 지금의 20대에게 중요하면서, 지금의 20대를 잘 보여주는 몇 가지 주제에 대해 이야기를 하고자 한다. 첫 번째는 일간베스트, 두 번째는 공정이다.

 

1. 일간베스트의 그림자

군사정권 시절의 일들은 우리 세대에게 학교, 뉴스에서나 접할 수 있는 과거의 일들이다. 무미건조하게 교과서에서 다루었던 내용들을 기억해보면

 1961년에 군인들이 쿠데타를 일으켜 박정희 정권이 들어섰다. 박정희 정권동안 크게 경제가 발전했지만 20년간 이어진 독재는 민주주의를 후퇴시켰다. 김재규 중앙정보부장이 박정희 대통령에게 겨눈 총구로 인해 1979년에 박정희 정권은 막을 내렸다. 이어 들어선 최규하 정권 역시 군사 쿠데타로 인해 머지않아 막을 내리며 1980년부터 전두환 정권이 들어섰다. 전두환 정권은 광주에서 민주주의를 요구하는 시민들을 무참히 진압했고 외부로의 정보 유출까지도 통제했다. 시간이 흘러 1987년 6월 항쟁 끝에 대통령 직선제를 얻어내며 군사 독재 정권은 막을 내리게 된다. 그러나 김영삼-김대중 후보 간에 표가 갈리며 정권을 이어받을 사람으로 노태우 대통령이 선출되어 군인 출신 정권은 5년 연장되었다. 노태우 대통령을 이어 김영삼 대통령이 당선되며 문민정부 시대가 열리게 된다. 

정도로 요악할 수 있다. 그러나 2010년대에 들어 인터넷 커뮤니티 ‘일간 베스트(이하 일베)’ 가 등장하며 청소년들에게 혼란을 주기 시작했다. 일베는 극 보수 성향 인터넷 커뮤니티로 ‘라도’, ‘홍어’, ‘7시(지도에서 전라도가 시계방향으로 7시에 위치하고 있다는 것에서 유래한 명칭)’ 등 전라도 지역에 대한 혐오 발언을 서슴지 않았고 5.18 민주화 운동을 ‘광주 폭동’이라고 부르는 등 왜곡된 언행을 일삼았다. 군사정권의 일을 교과서에서 “과거에 이런 일이 있었다더라.” 정도로 공부한 청소년들에게 일베의 사상은 큰 충격으로 다가왔다. 게다가 이들은 “교과서는 전부 좌익 세력들이 장악했다.”, “학교에서 잘못 가르치고 있다.”라는 말을 덧붙이며 왜곡된 정보들을 그럴싸하게 포장하여 진실인 것 마냥 호도했다.

 

 가치관이 아직 제대로 확립되지 않은 청소년들에게 이는 달콤한 유혹이었고 사실은 자신들이 잘못 배우고 있다는 배신감, 자신들은 교과서에서 배우는 거짓된 과거가 아닌 진실된 팩트(fact, 사실)를 깨우쳤다는 우월감에 휩싸이며 일베의 사상에 물들어갔다. 한편으로는 또래 친구들이 “광주는 하나의 폭동이다.” 와 같은 유행어를 쓰기 때문에 대화에 끼기 위해 따라하는 청소년들도 적지 않았다. 그렇게 2010년대 초-중반에 중-고등학교를 나온 세대는 일베 사상에 알게 모르게 젖는 일이 일쑤였다.

 어쩌면 이런 일은 우리 세대가 당시에 있었던 일에 대해 제대로 배울 기회가 없었기 때문에 생겼을지도 모른다. 그때 어떤 일이 있었는지를 넘어 왜 그러한 일이 일어났는지, 이를 뒷받침할 확실한 증거는 무엇인지, 피해자들은 얼마나 큰 고통을 받았는지를 제대로 배울 기회가 있었는가 하면 마땅히 떠오르지 않는다. 직접 기사를 찾아보거나, 다큐멘터리를 보거나, 피해자의 인터뷰를 보며 직접 익혔던 기억 밖에 없다.

 군사정권의 연장선 아닌 연장선이었던 박근혜 정부를 지나 문재인 정부에 들어서며 과거사를 재조명하는 일이 잦아졌다. 한 세대를 지나쳐버렸지만 더 늦기 전에 다시금 그때 있었던 일들을 낱낱이 조사하고 교과서에 기록하여 잘못된 역사관이 퍼지는 것을 막아야 할 것이다.

 

2. 조국 사태에서 보는 공정을 향한 열망

 2016년 수능 무렵, 공정하지 못한 방법으로 비선실세의 딸이 대학에 입학한 것이 밝혀진 것을 시작으로 전 정권의 민낯이 드러나며 국민들은 거리로 나왔다. 거리로 나온 국민들은 대통령을 대통령 직에서 파면시켰고 1년 이른 대선을 치뤄 새 대통령을 선출했다.

 이어 들어선 문재인 정권에게 국민들이 건 가장 큰 기대는 ‘공정한 사회’ 였을 것이다. 취임식에서도“기회는 평등할 것입니다. 과정은 공정할 것입니다. 결과는 정의로울 것입니다.’ 라며 공정 사회를 향한 포부를 다지기도 했다.

 

 그러나 2019년 여름, 조국 전 장관 딸의 입시 비리 문제가 불거졌다. 부정한 방법으로 대학과 의전원에 진학한 것이 아니냐는 의혹이다. 그럼에도 문재인 대통령은 조국 전 장관 임명을 강행했다. 인사는 메시지라고 한다. 문제가 있는 사람이지만 검찰 개혁을 위해서는 어쩔 수 없다는 의지가 비치는 대목이었다. 이에 사람들은 분노했다. 그 중에서도 20대는 특히 위법성보다 공정에 초점을 맞췄다.

 조국 딸이 고등학교 재학 중 의학 논문에 제1 저자로 등재된 것이 위법한지 여부 보다는 그 과정에 관심을 가졌다. 평범한 고등학생이 논문에 참여할 기회가 얼마나 있는가. 있다고 한들 의학 논문과 같이 높은 수준의 논문에 참여할 수는 있는가. 어떻게 해야 제1 저자로 등재되기까지 하는가. 모든 과정이 받혀주는 누군가가 뒤에 있지 않고서 불가능한 일들이었다. 여기서 “나는 저런 기회를 얻지 못했는데.” 라며 박탈감을 느끼게 된다.

 

 한편 비슷한 시기에 나경원 의원의 아들이 고등학교 재학 중 방학동안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연구실을 빌려 연구를 하고 논문을 썼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이 역시 외부인이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연구실을 인맥을 통해 빌린 것이 위법한지 보다 그 사실 자체에 주목했다. 논문에 참여하는 과정에서 위법한 과정이 있었는지, 이로 인해 입시 과정에서 부당한 이득을 취했는가 보다는 어떻게 일개 고등학생이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연구실을 빌려 실험을 할 수 있었겠는가, 이는 부모가 뒤를 봐준 것이 아니고서 불가능한 것이 아니냐는 대목에 초점을 맞춰 분노했다. 일련의 과정이 아무리 절차상 위법성이 없다고 한들 절대 공정했다고는 말 못할 일들이기 때문이다.

 이어지는 수시 공정성 논란 역시 비슷한 대목에서 나왔다. 돈 있는 집 자식이 부모 잘 만나서 대외활동 많이 하고, 스펙 많이 쌓고, 교내활동까지 관리 받으며 대학에 진학하는 일이 점점 잦아지는데 이럼에도 수시가 공정한 입시 방법인가, 한 날 한 시에 똑 같은 시험을 쳐서 들어가는 것이야 말로 공정하지 않겠냐는 것이다. 물론 정시 역시 대치동과 대치동이 아닌 곳, 서울과 지방, 도시와 시골에 따라 교육 여건이 차이가 있고, 필연적으로 가진 자에게 유리할 수 밖에 없다는 점에서 공정성 논란을 피하기 힘들다. 다만, 이러한 논란의 핵심에서 ‘공정’을 향한 열망 만큼은 확실하게 읽어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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