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8편. 오스트리아의 종교, 교육, 사상에 지대한 역할을 한 수도원, 멜크( Melk Abbey)
오스트리아의 비엔나에서 동쪽으로 약80km 떨어진 멜크(Melk)는 합스부르크 왕가가 성립하기 전 130년 동안 오스트리아를 지배했던 바벤베르크 왕조(Babenberg: 976-1106)의 수도였다. 서쪽으로 린츠(Linz)와 소금의 생산지 잘츠부르크(Salzburg), 북서쪽으로는 체코의 중세도시 체스키 크롬로프(Český Krumlov), 동쪽으로는 비엔나로 통하는 교통의 중심지였다. 멜크(Melk)는 오스트리아 니더외스터라이히주(Niederösterreich)에 위치한 도시로, 면적은 25.71km2, 높이는 213m, 인구는 5,257명(2012년 기준), 인구 밀도는 200명/km2이며 도나우 강의 바하우(Wachau) 계곡과 합류하는 지점에 위치한다. 주요 관광 명소로 멜크 수도원 학교가 있으며 움베르토 에코 (Umberto Eco)의 추리소설 《장미의 이름》의 배경이 된 곳이기도 하다.
헝가리 부다페스트(Budapest)와 세르비아의 베오그라드(Beograd) 그리고 우크라이나를 지나 흑해로 빠지는 유럽의 젖줄 도나우 강과 작은 멜크 강이 합류하는 멜크의 산 중턱에 둘레 320m에 이르는 성벽으로 둘러싸이고, 65m에 이르는 우뚝 솟은 첨탑이 멜크 수도원(Melk Abbey)을 마치 군사들이 주둔하는 요새처럼 보이게 한다.
이것은 원래 수도원 건물이 아니라 1106년 바벤베르크(Babenberg) 왕조의 레오폴트 2세(Leopold II)가 궁궐을 베네딕트 수도원에 기증하여 수도원으로 만들었기 때문이다. 수도원은 3세기 중반 이집트에서 안토니우스(250-355경)가 가톨릭 교리를 보다 깊이 연구하기 위하여 기도와 금욕 등 세속의 유혹을 외면하며 은둔생활을 하는 공동체로 시작했는데, 4-7세기 비잔틴 제국시대에 급속도로 확산되었다.
529년경 누르시아의 베네딕투스가 로마의 남동쪽 몬테카시노에 있던 아폴로신전을 부수고 세운 몬테카시노 수도원(Monte Cassino Abbey)이후 융성했던 수도원은 1000여 년이 지나는 동안 종교개혁과 이슬람을 믿는 오스만 튀르크의 침략을 받으면서 크게 쇠퇴했지만 아직 수도원이 융성하던 시기에 레오포드 3세가 베네딕트 수도원에 궁궐을 기증하자 수도사를 위한 학교로 사용하다가 1702년부터 20여 년 동안 개축 공사 후에는 순수한 수도원으로 복원되었다. 하지만 나폴레옹 전쟁 당시 다시 한 번 점령을 당했고 나폴레옹은 1805년과 1809년 두 번에 걸쳐 자신의 사령부를 이곳 수도원에 설치했었다. 멜크 수도원은 이후 오스트리아의 종교, 교육, 사상에 지대한 역할을 하며 오스트리아 인물의 정신적 지주 역할을 했다.
1702년 새로운 바로크 식 건물을 지을 당시, 디트마이어 신부는 건축가 야콥 프란타우어(Jakob Prandtauer)에게 주문하여 건물을 앉히기에 부적합한 사다리꼴의 부지에 건물을 짓게 했으며 그러면서도 주위환경과 완벽한 조화를 이루는 아름다운 바로크 양식의 수도원을 탄생시켰다. 야콥 프란타우어가 1726년 사망한 후 그의 제자인 뭉게나스트(Munggenast)가 완성하였다.
현재 멜크 수도원은 오스트리아 전국의 23개 가톨릭 교구를 관리하는 한편 학생들도 가르치고 있는데, 특히 오랫동안 수도사를 위한 학교 역할을 해온 탓에 고문헌과 고서적을 많이 소장하고 있는 것으로 세계적으로 유명하다.
도서관(Bibliothek)은 두 층으로 되어 있으며 파울 트로거가 믿음을 상징화하여 그린 천정화가 있다. 십만권의 책을 소장하고 있으며, 1800개의 필사본도 소장하고 있다. 입구에는 4개의 학문을 상징하는 금박을 입힌 조각상이 있다.
유럽 최대의 바로크 양식의 멜크 수도원은 지금도 신도들이 예배를 드리는 성당이어서 골목길을 지나 산 중턱의 수도원까지 올라갈 수 있지만, 수도원 정문 앞에는 넓은 주차장이 있어서 이곳에서 곧바로 정문으로 들어갈 수 있다. 주차장에서는 수도원의 전경이 한눈에 내려다보이는데, 파스텔 톤의 노란색과 주황색의 수도원 건물이 매우 세련되고 아름답다.
문 안쪽에는 수도원의 문장이 있으며 교단의 창시자 성 베네딕트를 묘사한 천장화가 있는 대기실 뒤에는 고위 성직자의 정원(Pralatenhof)이 있다.
부속성당은 수도원에 둘러싸여 있지만 우뚝 솟은 팔각형의 멋진 돔과 좌우 대칭을 이루고 있는 두 개의 탑은 수도원 전체를 압도한다. 65미터의 돔 안에는 왕좌에 있는 하나님, 예수님과 사도들, 그리고 교부 철학자 들이 자리 잡고 있다. 이 볼거리들이 가득한 한가운데에서 단연 눈에 띄는 것은 중앙제단으로 조각상들 그룹의 중앙에서 아포스틀레스(Apostles)의 두 공주들과 성 베드로와 성 바울이 순교 전에 서로 작별을 고하고 있는 모습이 인상적이다.
특히 흔히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대부분의 유적지들이 요란하게 표지 석을 세우는 것과 달리 주차장에서 정문으로 내려가는 계단의 벽에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이라고 간략하게 페인트로 쓴 글씨가 눈길을 끈다.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을 ‘황제의 계단(Imperial Staircase)’이라고 하는데, 그것은 2층이 황제가 머물던 궁전인 탓도 있지만 계단을 마치 천상의 세계로 올라가는 것으로 착각할 만큼 아름다운 그림으로 꾸민 나선형 계단이기 때문이다. 2층의 196m에 이르는 복도의 북쪽 벽에는 바벤베르크와 합스부르크, 즉 오스트리아를 다스렸던 역대 임금들의 초상화가 걸려 있고, 남쪽은 모두 창문이어서 실내가 유난히 밝고 화려해 보인다. 게다가 복도의 천장은 쉔브론 궁전이나 베르사유 궁전의 천정처럼 돔형으로 만든 것도 황홀하다.
황제의 갤러리는 길이 196미터에 달하는 긴 회랑으로 수도원을 찾는 고위 성직자나 왕족과 귀족들이 머물던 방이 있던 복도이다. 수많은 초상화와 그림들이 전시되어 있다.
그러나 멜크 수도원이 오랫동안 수도사를 양성하는 학교로 사용했던 탓에 9세기 초반에 쓰였다는 설교 집을 비롯하여 10세기에 작성한 1800권의 필사본 등 10만여 권의 장서들을 보유하고 있는 도서관이 수도원의 자랑이다. 도서관의 방대한 수많은 장서들로 멜크 수도원이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으며, 역사학자와 고고학자들이 고문헌을 연구하는데 매우 중요하다고 한다. 2층의 박물관과 도서관을 한 바퀴 돌아보고 나오면 수도원의 뒤편이다. 이곳에서는 멜크 마을과 멜크 강이 한눈에 내려다보여서 마치 전망대 같다.
멜크 마을은 유럽의 중세도시가 그러하듯 아름다운 조각과 분수가 있는 광장을 비롯해서 마차가 다니던 좁은 골목에 말을 대신한 소형차들이 앙증맞게 오가고 있으며, 시민들은 노천카페에서 와인을 즐기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다.
출처
1. 디트news24(http://www.dtnews24.com)
2. 오스트리아 대사관,
https://www.bmeia.gv.at/ko/oeb-seoul/
3. 멜크수도원 Official Travel Portal,
https://www.austria.info/en/things-to-do/cities-and-culture/architecture/melk-abbe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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