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투리는 일정한 용도로 쓰고 남은 나머지를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다. 이런 자투리는 때로는 우리의 삶에서 여백, 여유로 나타나기도 한다.

여백은 버려진 공간이 아니다. 쓸모없는 공간이 아니다. 비어 있음으로 해서 사유와 명상이 가능한 공간이다. 자투리가 없으면 너무 야박하고 인정머리 없고 조금 답답하다. 자투리 혹은 여백이 주는 아름다움을 생각해보는 시, 문학, 그림, 사진을 소개해 본다. <편집자 주>

 

- 백자대접

(출처: 국립중앙박물관 홈페이지)
(출처: 국립중앙박물관 홈페이지)

 

조선시대의 백자대접으로 음식을 담는 그릇이다. 높이 7.4cm, 입지름 17cm, 바닥지름 7cm이다. 백자는 문양이 없는 순백자를 비롯하여 음각백자(陰刻白瓷상감백자(象嵌白瓷청화백자(靑華白瓷철화백자(鐵畵白瓷진사백자(辰砂白瓷) 등으로 구분된다. 초기에는 소량의 최고품만이 생산되어 왕실에서만 사용되었다. 그러다가 분청사기가 소멸되는 17세기경부터는 도자기의 주류를 이루게 되었고, 관요(官窯)인 경기도 광주의 분원(分院)을 중심으로 제작되었다.

 

백자는 고려 초기부터 청자와 함께 일부가 만들어져 그 수법이 계속 이어지면서 조선시대 자기의 주류를 이루었다.

 

 

 

- 백자양각모란문양항아리

 

(출처: 국립중앙박물관 홈페이지)
(출처: 국립중앙박물관 홈페이지)

조선시대 백자로 음식물을 저장하던 항아리로 사용되었다. 높이 14.7cm, 입지름 9.4cm, 바닥지름 9cm, 최대지름 15cm이다. 이와 같은 백자에는 두 가지 유형이 있다. 하나는 고려시대 백자의 계통을 이은 것으로 부드러운 곡선의 기형(器型)을 이루고 있다. 또 하나는 원나라 때부터 고려자기에 영향을 끼쳤던 유형으로 유약이 대체로 얇게 입혀져 백색으로 발색되며, 때로는 약간 청색을 띠고 있는 것이다.

 

- 백자큰항아리

(출처: 국립중앙박물관 홈페이지)
(출처: 국립중앙박물관 홈페이지)

조선시대의 백자항아리로 백자 대호라고도 불린다. 높이 37.1cm, 입지름 15.3cm, 바닥지름 14.7cm, 최대지름 34.4cm이다.

 

- 백자접시

 

(출처: 국립중앙박물관 홈페이지)
(출처: 국립중앙박물관 홈페이지)

 

조선시대의 백자접시로 음식을 담는 접시로 지름 10.85cm, 바닥지름 5.16cm, 높이 3.4cm이다.

 

 

2020년 현재를 살고 있는 우리들의 곁에도 백자의 후손들이 생활 곳곳에 남겨져 있다. 우리의 밥 그릇, 국 그릇, 접시, 꽃병, 화병 등

백자는 한국인들이 일상 곳곳에 살아 숨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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