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02화. 풀밭위의 점심식사. 마네
에두아르 마네(Édouard Manet)는 프랑스의 인상주의 화가이다. 19세기 현대적인 삶의 모습에 접근하려 했던 화가들중의 하나로 시대적 화풍이 사실주의에서 인상파로 전환되는 데 중추적 역할을 하였다. 그의 초기작인 ‘풀밭 위의 점심 식사’와 ‘올랭피아’는 엄청난 비난을 불러 일으켰으나 반면에 수많은 젊은 화가들을 주변에 불러모으는 힘이 되었는데, 이들이 후에 인상주의를 창조하였다. 이 그림들은 오늘날 현대미술을 창시한 분수령으로 여겨진다. 그의 화풍의 특색은 단순한 선 처리와 강한 필치, 풍부한 색채감에 있다.'
에두아르 마네는 1832년 1월 23일 프랑스 파리의 부유하고 화목한 가정에서 태어났다. 그의 어머니인 외제니-데지레 푸르니에는 외교관 아버지를 두었고, 대부가 스웨덴의 왕태자였던 샤를 베르나도트(현 스웨덴 왕가의 시조, 칼14세 요한)였다. 그의 아버지인 오귀스트 마네는 프랑스의 법관이었는데 그의 아들이 법조계에 종사하기를 바랐다. 그의 삼촌인 에드몽 푸르니에가 그에게 미술계에 종사하도록 독려하고 어린 마네와 형제들을 종종 루브르 박물관에 데려가, 그림을 보여주며, 또 그림을 직접 그려주었다.
에두아르 마네가 ‘풀밭 위의 점심 식사’를 제작하는 동안 이 자굼이 이토록 커다란 스캔들에 휩싸이리라는 것을 예상하지 못했다. 그느 16세기의 거장들의 작품을 모티브로 하여 고전과 근대가 공존하는 작품을 창조하려 했을 뿐이었다.
그림에서 좌측 하단의 정물들의 묘사는 에두아르 마네는 훌륭한 화가가 되기 위해 반드시 거쳐가야할 시험대라 생각하고는 빅토린의 옷위에 쏟아져 풀밭위로 흩어진 식사의 흔적들에 대한 세부 묘사는 정물화 장르에 대한 에두아르 마네의 특별한 재능을 보여주고 있다. 정물 우측에 나체의 여인은 관객을 바라보며, 흔들림없는 그녀의 시선에서 나체로 있는 것에 대한 부끄러움을 찾아 볼 수 없다. 이런 여인의 모습으로 이 작품에 스캔들이 크게 일어나게 만들었다. 여인의 우측 남자 인물들의 포즈는 라파엘로의 ‘파리스의 심판’을 묘사하여 제작한 마르칸토니오 라이몬디의 판화에서 따온 것이다.
1800년 후반에 대단히 엄격했던 그림에 대한 당시의 파리에서의 살롱의 심사를 간단하게 설명하였다.
자료 출처
1. 네이버 블로그.
https://m.blog.naver.com/jrkimceo/221489775202
2. 위키백과
3. 알고가자. http://algogaza.com/740/
4. 국민일보.
http://news.kmib.co.kr/article/view.asp?arcid=0013088603&code=61171511&cp=nv
5. 세계미술관 기행. 시모나 바르탈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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