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4.    정조대왕의 효심이 깃든 효찰, 용주사(龍珠寺)

용주사 사천왕릉.  불법을 보호하고 악귀의 출입을 막아 사찰의 청정함을 유지하기 위해 세운다. 지국천왕, 광목천왕, 증장천왕, 다문천왕 등 사천왕상이 모셔져 있다. Photo by 최영규
용주사 사천왕릉. 불법을 보호하고 악귀의 출입을 막아 사찰의 청정함을 유지하기 위해 세운다. 지국천왕, 광목천왕, 증장천왕, 다문천왕 등 사천왕상이 모셔져 있다. Photo by 최영규

 

용주사는 신라 문성왕 16(854)에 갈양사라는 이름으로 창건되었다. 창건주는 염거화상으로 도의국사에 이어 가지산문 제2대 조사이다. 고려 광종 때는 혜거국사가 머물며 국가의 축원도량으로 삼았다는 기록도 남아 있지만 갈양사는 병자호란 때 소실된 후 폐사되었다.

용주사 대웅보전. 보물 제 1942호로 1790년 창건 당시 지어진 정면 3칸, 측면 3칸의 구조이며, 조선후기 능침사찰의 배치 특성을 잘 보여주는 구조이다. 특히 내부에 봉안되어 있는 ‘삼세여래후불탱화’는 조선 중기 최고의 화가였던 ‘단원 김홍도’의 작품으로 알려져 있다. Photo by 최영규
용주사 대웅보전. 보물 제 1942호로 1790년 창건 당시 지어진 정면 3칸, 측면 3칸의 구조이며, 조선후기 능침사찰의 배치 특성을 잘 보여주는 구조이다. 특히 내부에 봉안되어 있는 ‘삼세여래후불탱화’는 조선 중기 최고의 화가였던 ‘단원 김홍도’의 작품으로 알려져 있다. Photo by 최영규

 

갈양사가 다시 중창하게 된 것은 조선 제22대 정조 임금 때다. 정조는 즉위 13년을 맞던 해 전농동 배봉산에 있던 아버지 사도세자의 묘를 이곳으로 이장하고, 수원화성과 행궁을 만드는 대대적인 역사를 벌인다. 아버지 묘와 화성의 건설과정을 보기 위해 수시로 이곳까지 거둥하게 되자 아예 시흥으로 질러가는 새로운 길을 만들기도 하고 안양의 만안교라는 돌다리도 새로 만들어 놓게 된다.

이때 정조의 마음을 크게 움직인 스님이 보일당 사일스님이다. 장흥 가지산 보림사 출신이었던 보일스님은 정조에게 부모은중경의 내용을 설해주었다고 한다. 정조는 보일스님이 들려준 부모은중경의 내용에 깊은 감명을 받아 사도세자의 묘를 이장하고 그 주변에 폐사된 갈양사터에 절을 새로 중창하여 용주사라 이름 붙여서 사도세자 묘의 능침사찰로 삼았다.

천보루(天堡壘)와 5층 석탑.  1790년 창건 당시 지어진 정면 5칸, 측면 3카의 2층 누각이다. 목조기둥 아래에는 석조기둥과같은 높은 초석이 건물을 받들고 있다. 5층 석탑에는 부처님 사리 2과가 봉안되어 있다. Photo by 최영규
천보루(天堡壘)와 5층 석탑. 1790년 창건 당시 지어진 정면 5칸, 측면 3카의 2층 누각이다. 목조기둥 아래에는 석조기둥과 같은 높은 초석이 건물을 받들고 있다. 5층 석탑에는 부처님 사리 2과가 봉안되어 있다. Photo by 최영규

 

자료 출처

1. 용주사

https://ko.wikipedia.org/wiki/%EC%9A%A9%EC%A3%BC%EC%82%AC

2. 티스토리

https://leeesann.tistory.com/3974

3. 화산 용주사

http://www.yongjoosa.or.kr/about/about01.jsp?top_menu_idx=1&sub_menu_idx=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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