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어팟 프로

내돈내산 : ‘ 주고 물건’ 이라는 뜻의 신조어



 “콩나물 대가리같다.”, “누가 저런걸 22만 원이나 주고 사냐.”, “길거리에서 쓰기 부끄럽게 생겼다.”

 에어팟이 4년 전 처음 세상에 모습을 드러냈을 때 사람들의 평가는 좋지 못했습니다. 애플 제품을 구매하면 구성품으로 제공하는 ‘이어팟’에서 선을 제거한 것이 전부인 디자인과 실제 음질마저도 동일했던 첫 번째 에어팟은 언뜻 보기에는 그저 어디에나 있을 법한 무선 이어폰일 뿐이었습니다. 더군다나 이어팟의 소비자 가격이 4만 원이었기 때문에 단지 선을 제거하는 비용을 18만 원이 드는 셈이었습니다. 그런 비싼 이어폰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시선이 고울 리 만무했습니다.

 

첫 번째 에어팟은 귀에 착용하는 유닛이 콩나물을 닮아 콩나물이라는 별명이 붙었다
첫 번째 에어팟은 귀에 착용하는 유닛이 콩나물을 닮아 콩나물이라는 별명이 붙었다

 그러나 에어팟은 매니아 층을 시작으로 호평을 받기 시작해 국내에서는 발매 후 약 2년이 지나서야 뒤늦게 붐이 불기 시작했습니다. 저게 뭐라고 20만 원이나 하냐던 사람들은 막상 사용해보니 그 편의성에 감탄해 더이상 유선으로 돌아갈 수 없다고들 이야기를 합니다. 저도 에어팟을 처음 사용했을 당시에는 단지 (재수)학원에서 후드티 모자를 둘러쓰고 조교와 선생님 몰래 이어폰을 끼고 음악을 듣기 위한 목적이었지만 막상 에어팟의 편의성에 매료된 탓에 수능이 끝나고도 중고로 처분하지 않고 계속해서 사용하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인기에 힘입어 애플은 지난 해 무선이어폰 시장 점유율 54%를 기록하며 전체 시장의 절반 이상을 차지했습니다. 무엇이 에어팟을 이렇게나 특별하게 만들었을까요. 어떻게 에어팟 1세대, 에어팟 2세대, 에어팟 프로 단 3종류의 제품만으로 그 이외의 수많은 종류의 무선 이어폰을 합친 것보다 더 높은 판매량을 기록할 수 있었을까요.

 

 에어팟을 사용하는 사람들은 그 이유를 하나 같이 “편하니까.” 라는 한 마디로 표현합니다. 아이폰 및 애플 기기를 사용하는 입장에서는 단지 에어팟을 귀에 꼽기만 해도 바로 기기와 연결되기 때문에 블루투스 설정에 들어가서 에어팟과 연결을 하는 등의 번거로운 과정을 거치지 않아도 됩니다. 기존 블루투스 이어폰은 매번 착용할 때마다 설정에서 블루투스 탭을 찾아 들어가 수동으로 연결을 해주어야 했지만 에어팟은 이 과정을 생략하도록 설계된 것입니다.

 

 더 나아가 에어팟을 귀에서 빼면 음악이 자동으로 멈추고 기기와의 연결이 끊깁니다. 잠깐 에어팟을 귀에서 빼고 바깥 소리를 들어야 할 때 음악을 멈춰주지 않아도 자동으로 음악이 멈추기 때문에 다시 에어팟을 귀에 꼽으면 마지막으로 들었던 부분부터 이어서 들을 수 있습니다.

 에어팟을 한 쪽 귀에만 착용한 경우에는 사운드를 스테레오에서 모노로 자동으로 전환하여 소리를 온전히 들을 수 있게 해줍니다. 왼쪽에서는 드럼 소리가, 오른쪽에서는 기타 소리가 나는 음악을 듣고 있을 때 오른쪽 에어팟 유닛을 귀에서 빼더라도 오른쪽에서 들려야 할 기타 소리가 왼쪽에서도 들리도록 만들어 소리를 온전히 듣지 못하는 일을 막아주는 식입니다.

 이러한 편의성을 앞세워 에어팟은 단 3종류의 제품 만으로 전세계 이어폰 시장의 절반을 차지할 수 있었습니다. 물론 이는 아이폰을 비롯한 애플 기기와 연결했을 때 누릴 수 있는 기능이기 때문에 안드로이드 스마트폰 사용자에게는 큰 매리트는 아닐 것입니다. 그럼에도 크기, 음질, 통화품질 등 무선 이어폰의 기본에도 충실하기 때문에 큰 인기를 누릴 수 있었습니다. 역으로 에어팟을 제대로 사용하기 위해 아이폰을 구매하는 사용자도 있을 만큼 에어팟은 단연 큰 성공을 거두었습니다. 에어팟 제품군의 매출만으로도 우버, 어도비와 같은 거대 IT 기업들의 매출과 맞먹는다고 하니 긴 말이 필요없을 것 같습니다.

 

 에어팟 1세대와 2세대에 이어 발매된 에어팟 프로는 국내 기준 11만 원 높은 33만 원에 판매되고 있습니다. ‘프로’가 붙은 만큼 기능과 음질 면에서 전작보다 큰 개선이 있었는데 그 중 지금으로써 가장 큰 차별점은 ‘노이즈 캔슬링’ 기능입니다. 노이즈 캔슬링은 이어폰에 장착된 마이크를 통해 들어오는 주변 소음을 인식한 후 이와 정 반대되는 파동을 가진 소리를 이어폰을 통해 재생시켜 주변 소음을 상쇄시켜주는 기술입니다. 쉽게 말해 주변 소음과 반대되는 소리를 귀에 재생시켜 주변 소음을 ‘플러스 마이너스 해서 제로’ 로 만드는 기능입니다.

 노이즈 캔슬링은 BOSE, 소니와 같은 음향기기 제조사에서도 오랜 기간 많은 돈을 들여 연구하고 있는 분야이지만 그만큼 복잡한 기술을 필요로 하기 때문에 노이즈 캔슬링이 들어간 이어폰은 가격이 자연스레 비싸질 수 밖에 없습니다.

 

노이즈 캔슬링 기술에 대한 애플의 설명
노이즈 캔슬링 기술에 대한 애플의 설명

 애플은 노이즈 캔슬링 기능을 추가하며 에어팟 프로에 이를 위한 프로세서를 탑재했습니다. 이 프로세서는 아이폰4에 탑재되었던 프로세서와 동일한 성능을 자랑하는데 이를 이용해 초당 200번 노이즈 캔슬링을 보정하여 보다 높은 정확도를 유지시킵니다. 이 덕분에 에어팟 프로의 노이즈 캔슬링은 비슷한 가격대의 이어폰 중에서 아주 높은 수준의 완성도를 자랑합니다.

 또한 노이즈 캔슬링을 역으로 활용하여 마이크를 통해 인식한 외부 소음을 그대로 에어팟에서 재생시키는 ‘주변음 허용’ 기능을 제공합니다. 본래 노이즈 캔슬링은 주변 소음과 반대되는 파장을 재생시켜 소음을 상쇄시키는 역할을 하지만 이와 반대로 주변 소음과 일치하는 파장의 소리를 재생시키면 외부의 소음이 그대로 들리게 됩니다. 이 덕분에 에어팟을 착용하고 있더라도 주변 소음을 고스란히 들을 수 있어 에어팟을 끼고도 주변 사람과 대화할 수 있습니다.

 이렇듯 단순히 ‘무선’과 ‘노이즈 캔슬링’ 이라는 기능을 추가하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이를 어떻게 사용자가 편하게 받아들일 수 있을지 연구한 끝에 에어팟이 탄생했고 큰 성공을 거둘 수 있었습니다.

 이에 그치지 않고 올 가을에는 소프트웨어 업그레이드를 통해 에어팟 프로에 두 가지 편의 기능을 추가한다고 합니다. 첫 번째로 사용자가 조작중인 기기를 인지하고 그 기기를 따라가며 에어팟이 연결되는 기능입니다. 아이폰을 조작하며 에어팟을 만지다가 아이패드에서 동영상을 재생하면 자동으로 아이패드로 에어팟이 연결되고, 다시 맥북에서 음악을 재생하면 에어팟도 자동으로 맥북으로 연결되는 방식입니다.

 

가상 공간을 생성하여 에어팟을 낀 채 고개를 돌리더라도 소리가 들려오는 방향은 고정되어있는 느낌을 준다
가상 공간을 생성하여 에어팟을 낀 채 고개를 돌리더라도 소리가 들려오는 방향은 고정되어있는 느낌을 준다

 두 번째로 에어팟을 착용한 채 5.1ch, 7.1ch 혹은 돌비 애트모스 음향을 지원하는 영상을 재생했을 때 공간감을 느끼도록 입체음향을 재현하는 기능을 추가합니다. 에어팟을 착용한 사용자를 둘러싼 가상의 공간과 스피커를 만들고 에어팟의 자이로스코프 센서를 이용하여 사용자의 머리가 흔들리는 것을 감지하고 그에 맞춰 소리를 재생하여 사용자가 공간감을 느끼게 하는 원리입니다.

 

 이러한 과감한 시도는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 환경을 모두 통제할 수 있는 애플이기에 가능한 일이지만 이 모든 시도를 관통하는 주제인 ‘사용자 편의성’은 어느 분야에서도 최우선 되어야 할 주제입니다. 기능은 훌륭하지만 사용자 편의성을 고려하지 않아 시장에서 외면받는 제품은 수 없이 많습니다. 사용자를 위한 제품이지만 사용자 편의성을 고려하지 않았다면 기능이 훌륭하더라도 실패한 제품이 될 수 밖에 없습니다. 반면 애플은 세상에 존재하지 않던 기술을 만들어내지는 않더라도 세상에 존재하던 기술을 그 누구보다 편리하게 사용할 수 있도록 만드는 능력이 있기 때문에 에어팟이 큰 성공을 거둘 수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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