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 케이블 TV 채널을 보다가 대추나무 가지에 칼로 그어진 자국을 방영하는 장면을 보았습니다.

'환상박피(環狀剝皮)'라는 것인데요. 생산성을 증가시킬 목적으로 나무 또는 나무의 가지 줄기를 따라 환상(ring)으로 나무껍질(bark)을 제거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리포트를 하는 기자의 멘트입니다. 

"줄기에 상처를 내 광합성으로 만들어진 영양분이 뿌리로 향하지 않고 다시 줄기로 가도록 하는 환상박피를 한 겁니다. 작물이 고사할 우려가 커 좀처럼 쓰지 않는 방법이지만, 농민들은 열매가 더 많이 달리게 하려고 대추나무 줄기에 칼집을 내는 방법까지 썼습니다"

지난 여름 태풍과 폭우 피해를 당해서 대추 수확량이 뚝 떨어지는 바람에 농가에서는 수확량을 늘려보기 위해 나무에 일부러 상처를 낸다고 합니다. 상당히 위험하지만 열매가 달릴 수 있는 마지막 보루로 환상박피를 시행한다는 것입니다.

채널A 방송화면 캡처
채널A 방송화면 캡처

지난 9월15일부터 27일까지 서울 종로구 청운동의 사진전문 갤러리 ‘류가헌’에서 최금화(57) 작가의 사진전 'PAIN TREE'가 열렸다고 합니다. 사진전의 제목을 잘보면 'PINE'이 아니라 PAIN(고통·통증)입니다.

유려한 곡선을 가진 품격있는 소나무들이 아니라 수피(나무줄기의 바깥 조직)가 깊게 패이고, 줄기가 꺾인 채 죽어가는 소나무들이 액자를 채우고 있었습니다. 

수피에 깊게 팬 커다란 생채기들은 일제강점기 때 비행기 연료로 쓰이던 송탄유를 만들기 위해 송진을 강제로 채취한 흔적들이라고 합니다.

"일산에서 사진카페를 운영하며 사진 강좌를 열 때였는데 누군가 ‘이런 소나무 사진이 있다’며 보여주는데 신기하게도 수피에 커다란 하트가 새겨져 있는 거예요. 예쁘다고만 생각했는데 알고 보니 송진 채취 때문에 생긴 상처가 그렇게 하트 모양으로 굳어진 거더라고요"

최 작가는 "인간의 욕심 때문에 상처 입은 소나무들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었어요. 아무도 기억해주지 않는 그 아픔을 나라도 기록해줘야겠다 생각했죠"라며 병들고 쓰러져 가는 소나무들을 촬영하게 된 계기를 설명했다.
 

최금화 작가의 사진전 'PAIN TREE' 

안타까운 것은 일제강점기 때 한꺼번에 많은 양의 송진을 채취하려고 수피 전면에 톱날로 몇 십 줄의 깊은 상처를 내는 바람에 회복이 되지 못하고 시름시름 앓다가 생을 마감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최 작가는 "인간이 나무에서 얻은 게 참 많은데 염치없는 인간은 필요한 것만 챙기고 아낌없이 준 나무의 말로는 어찌되든 나 몰라라한다"고 탄식했다. 

인류의 과학이 최첨단으로 발전한 오늘에도 나뭇잎 한장이 하는 광합성 작용을 모방하지 못한다고 합니다. 최재관 농어업정책포럼이사장은 산림조합중앙회가 발간하는 '산림' 10월호 기고를 통해 "태양에너지를 이용해 대기중의 이산화탄소와 물을 흡수하고 산소와 탄수화물을 만드는 위대한 생명활동을 인간은 아직도 흉내내지 못한다"라고 말합니다. 

자연은 인간의 마지막 보루입니다. 인간은 자연의 일부이고 여러 생태계가 조화를 이루면서 공존하는 것이 지구입니다.

상처를 입었지만 하트 모양으로 아문 소나무 껍질. 최금화 작가의 사진전 'PAIN TR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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