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항공이 아시아나항공 지분 1조8000억원(신주 1조5000억원·영구채 3000억원)을 사들이는 식으로 인수에 나선다

인수 자금은 대한항공의 2조5000억원 규모 주주 배정 유상증자로 마련한다. 대한항공의 최대주주인 한진칼도 유상증자에 참여해 7300억원을 투입한다. 한진칼의 투자 자금은 산은이 마련한다.

산은이 한진칼의 5000억원 규모 제3자배정 유상증자에 참여하고 3000억원 교환사채(EB)도 인수하기로 했다. 신주 취득 시 대한항공의 아시아나항공 지분율은 63.9%가 돼 최대주주로 올라선다.

◆ 산은 "정책자금 투입 최소화…시장서 자금유입 구조 마련"

이번 인수구조를 분석하면 산업은행은 한진그룹의 아시아나항공 인수에 투입하는 자금의 규모를 8000억원으로 최소화하면서 대한항공 기존 주주들의 자금을 최대한 유치해 아시아나항공 인수를 하도록 하는 방식을 택한 것이다.

그러면서 한진칼 오너와 경영진의 도덕적 해이를 막기 위해 조원태 한진그룹 회장 보유 한진칼 지분 전량을 담보로 잡았다.

최대현 산업은행 부행장은 "이번 거래는 조원태 (한진그룹) 회장이 보유한 한진칼 지분 전체와 한진칼이 인수하게 될 대한항공 지분을 담보로 제공한다"며 "통합 추진과 경영 성과 미흡 시 경영일선에서 퇴진하게 하는 등 경영책임을 부담하게 됐다"고 말했다. 산업은행은 한진칼에 8000억원을 투자하면서 보유하게 될 신주는 의결권 있는 보통주다. 산업은행은 이를 통해 한진칼과 대한항공의 구조 개편을 감시하고 견제하는 역할을 할 것으로 보인다.

대한항공을 보유한 한진그룹의 지주사인 한진칼과 대한항공은 16일 오전 각각 이사회를 열고 아시아나항공 인수를 결의했다. 인수가 마무리되면 대한항공은 아시아나항공의 최대 주주가 되고 궁극적으로 아시아나항공을 흡수 통합하게 된다. 사진=픽사베이
한진그룹의 지주사인 한진칼과 대한항공은 16일 오전 각각 이사회를 열고 아시아나항공 인수를 결의했다. 인수가 마무리되면 대한항공은 아시아나항공의 최대 주주가 된다. 사진=픽사베이

◆ 대한항공 주주들 유상증자 참여가 관건

이번 딜의 성공여부는 대한항공 주주들이 유상증자에 얼마나 참여하느냐에 있다. 유상증자에 참여하지 않으면 대규모 실권주가 발생할 수 있다. 앞서 대한항공은 지난 2015년과 2017년에도 유상증자를 했다가 실권주가 발생해 주관사가 이를 떠안은 바 있다.

국내 초대형 항공사가 탄생한다는 점에서 자금 조달이 어렵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지만 주요 주주들의 반발로 인한 소송 위험도 있다. 한진칼의 최대주주인 KCGI 등 3자 주주 연합이 산은의 한진칼 제3자 배정 유상증자에 반발해 법적 효력 무효 소송을 제기할 수 있다. 법적 소송으로 번질 경우 두 항공사의 통합이 지연될 수 밖에 없다.

한진칼 유상증자 및 아시아나 항공 지분 인수 이후 지배구조도. 자료=유안타증권
한진칼 유상증자 및 아시아나 항공 지분 인수 이후 지배구조도. 자료=유안타증권
자료=유안타증권

◆ 코로나19 충격 사라졌을 때 여객 사업 수혜 예상

양사가 여객 부문 인력과 조직을 최대한 보존한 채 코로나19의 충격이 사라질 때까지 버틸 수 있다면 정부입장에서는 고용 충격을 줄일 수 있고 양사는 여객 시장 회복 시 수혜를 충분히 누릴 수 있다.

향후 양사의 인력 구조조정은 느리게 진행될 전망이다.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의 직원수는 각각 1.9만명, 0.9만명 (해외 현지 임직원 등은 제외)에 달한다. 양사간 중복 업무 인력, 극심한 부진을 겪고 있는 여객 사업 관련 인력은 축소의 대상이 될 수 있지만 양사 모두 항공화물에서 영업이익을 창출하고 있어 인력 구조조정의 속도를 늦출 수 있는 여지는 있을 것으로 보인다.

대한항공이 아시아나항공을 인수하게 될 경우 확고한 국내 1위업체의 지위를 갖추게 된다. 2019년 기준 양사 및 각각의 자회사를 합산한 한국 국제선 여객 수 점유율은 48.9%를 차지하게 되며, 그 다음은 9.3%를 차지하게 되는 제주항공이다. 향후 여객 수요 회복 시 수혜를 기대할 수 있게 된다.

◆ 대한항공 주식 희석· 경영권 분쟁 가능성

대한항공의 주주들은 이번 통합으로 상당한 주식 가치의 희석을 겪게 된다. 2021년 3월 4일로 예정된 유상증자에서 발행될 주식수는 1억7000만주로 기존 발행 보통주 주식수 대비 100.3%이며, 유상증자 신주 1차 발행가격은 1만4400원으로 11월 16일 종가 대비 46.6% 할인돼 있다.

또 한진칼의 지분경쟁 상황이 대한항공의 아시아나항공 인수 결정에 영향을 미쳤는지에 대한 논란이 있을 수 있다. 한진칼 1대주주인 KCGI 측은 "한진칼과 대한항공의 일반주주 및 임직원 이해관계가 전혀 고려되지 않은 채 일방적인 희생만을 강요하는 것"이라며 반대의 뜻을 밝혔다.

한진그룹 경영권을 두고 조 회장과 대립하는 KCGI가 아시아나항공 인수를 반대하는 점은 커다란 걸림돌이다. 한진칼 지분 45.2%를 보유한 KCGI-조현아-반도건설 연합은 산은이 한진칼 3대주주로 올라서는 것에 반대하고 있다. 산은의 유상증자 참여가 조원태 회장의 영향력을 키우기 위한 것으로 판단하고 있기 때문이다.

KCGI는 “부채비율이 108%에 불과한 정상 기업 한진칼에 증자한다는 것은 명백히 조원태와 기존 경영진에 대한 우호 지분이 되기 위함으로 해석할 수밖에 없다”며 “그런데도 한진칼이 유상증자를 강행한다면 국민의 혈세를 낭비하는 제3자 배정보다는 기존 대주주인 우리 주주연합이 책임경영의 차원에서 우선 참여하겠다”고 밝혔다.

한진그룹의 지주사인 한진칼은 조원태 한진그룹 회장 측 지분이 41.4%로 경영권을 노리는 KCGI 등 이른바 ‘3자 연합’(46.7%)에 밀린다. 하지만 산은이 한진칼의 제3자 배정 유상증자에 참여하면 조 회장 측 지분은 47%로 급상승하는 반면 3자연합 지분율은 40%대로 추락한다.

유안타증권 최남곤 연구원은 "이번 딜의 쟁점은 경영권 분쟁과 관련이 있다"며 "한진칼의 지분구성상 조원태 회장 측(41.4%)과 3자 연합측(45.2%)의 지분 경쟁에 산업은행이 제3자 유상증자를 통해 11.9% 의 지분을 신규 취득하면서 균열을 만드는 형태가 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 대한항공·아시아나 노조 "인수 반대"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 노조는 "노동자 의견을 배제한 대한항공의 아시아나항공 인수 결정을 철회해야 한다"고 밝혔다. 

산업은행 등이 양사 통합 이후 인위적인 인력 구조조정은 없다고 밝혔지만 고용 불안 등을 초래할 수 있다며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동종 업계 인수시 중복 인력 발생으로 인한 구조조정이 불가피하다는 점에서다.

자칫 두 항공사의 동반부실도 우려되는 대목이다. 코로나19에 따른 각국의 하늘길 봉쇄로 글로벌 항공사들이 줄줄이 대규모 적자를 내고 있는데다 여객 수요 회복도 요원한 상황이라는 점에서 대한항공도 언제든 유동성 위기에 봉착할 수 있기 때문이다.

KB증권 강성진 연구원은 "구조조정 지연에 따른 기업 손익 개선이 느려질 수 있다는 점과 양사의 합병으로는 국내 저비용항공사들의 구조조정에 대한 뚜렷한 방안이 나오지 않는다는 점도 지켜봐야 할 문제"라고 말했다.

◆ 공정거래위원회 기업결합 심사

대한항공을 보유한 한진그룹이 아시아나항공 인수에 앞서 공정거래위원회의 기업결합 심사를 받아야 한다. 공정위는 합병 시 시장 경쟁이 제한될 경우 기업결합을 불허하거나 가격 인상 제한·특정 사업부문 매각 등 조건을 달아 승인한다.

공정거래법상 M&A를 할 때 직전 사업연도 자산총액이나 매출액이 신고회사 3000억원 이상·상대회사 300억원 이상이면 공정위의 승인을 받아야 한다.
 
지난해 말 기준 대한항공의 국내선 점유율은 22.9%, 아시아나항공은 19.3%다. 진에어·에어부산·에어서울 등 양사의 저가항공사(LCC) 점유율까지 합치면 합병 시 이들의 점유율은 62.5%에 달한다.

만일 독점적·지배적인 사업자가 탄생해 가격이 올라갈 압력이 상당하다고 판단되면 합병 자체를 불허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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