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입시 부정'도 '정권 찬양'도 아냐...출제 의도에 부합하는 문제일 뿐
- 한국사가 필수과목으로 전환된 2017학년도부터 매년 통일문제 다뤄

2021학년도 수능 한국사 20번 문제

 지난 3일 시행된 2021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수능) 한국사 과목의 마지막 문제인 20번 문제가 논란에 휩싸였다. 이 문제는 “다음 연설이 행해진 정부에서 추진한 정책으로 옳은 것은?”이라는 질문과 함께 “지난해 남과 북은 유엔에 동시 가입한 후…”로 시작되는 지문을 제시하고 있다.

 

 우선 지문의 ‘유엔에 동시 가입한 후’라는 부분을 통해 노태우 정부의 연설 임을 파악할 수 있다. 따라서 5개의 선택지 중 노태우 정부에서 추진한 ‘남북 기본 합의서 채택’이 정답 임을 알 수 있다. 함께 선택지로 주어진 ‘당백전 발행’과 ‘대마도 정벌’은 조선시대, ‘도병마사 설치’와 ‘노비안검법 시행’은 고려시대의 사건이다.

 실제로 이 지문은 노태우 대통령의 1992년 연두 기자회견 내용 중 일부를 발췌했다.

 이 문제를 두고 인터넷상에서 “이게 3점(높은 배점에 해당)이라고?”, “공부 안 해도 풀 수 있는데 겨우 3점이라니.”, “정부 맞춤형 문제가 아니냐.” 등의 논란이 일고 있다. 주요 언론 매체들도 이 문제를 잇따라 보도하며 “변별력이 없는 수능이다”, “정부 맞춤형 문제다” 등의 기사를 쏟아내고 있다.

 지문을 문재인 대통령의 연설로 착각한 일부 언론은 “수능 문제로 정권 홍보?”라는 헤드라인과 함께 “문재인 대통령 연설의 일부를 소개했다”며 문제를 보도했다가 황급히 수정하는 해프닝이 벌어지기도 했다.

 그러나 이 문제는 수능에서 한국사가 필수 과목으로 지정되며 절대평가로 전환된 이후부터의 출제 양상에 부합하는 정상적인 문제다.

 

 우선 문재인 정부의 통일 정책에 맞춰 이를 홍보하기 위한 문제가 아니냐는 의혹은 사실이 아니다. 박근혜 정권이던 2016년 11월에 치러진 2017학년도 수능은 한국사가 필수 과목으로 전환된 첫 수능이다. 이 수능에서도 20번 문제로 7·4 남북 공동 성명을 다루었다. 2018학년도 수능에서는 민주화 운동을 다루었지만 이어진 2019, 2020학년도 수능에서도 통일 문제를 다루었다.

 

 EBS 한국사 강사 최태성은 해설 강의 영상에서 이 문제를 두고 “마지막 문제는 통일 문제에요. 이게 그냥 떡 하니 정해져 있어요.”라며 20번 문제는 항상 통일 문제로 출제되고 있음을 언급했다. 수능 한국사 문제는 시대순으로 배치되어 있어 19-20번 문제에는 현대의 내용이 오는 것이 자연스러운 흐름이기 때문이다.

 

출처 = 한국교육과정평가원 보도자료
출처 = 한국교육과정평가원 보도자료

 또한 수준 이하의 문제 난이도를 두고 "이는 입시부정이 아니냐"는 논란 역시 한국사 과목의 출제 의도를 파악하지 못해 발생한 논란이다.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은 보도자료를 통해 “필수로 지정된 한국사 영역은 우리 역사에 대한 기본 소양을 평가하기 위해 핵심 내용을 위주로 평이하게 출제함으로써 수험 부담이 최소화되도록 하였다”라고 출제의 기본 방향을 설명했다.

 한국사 과목은 2017학년도 수능부터 절대평가가 이루어지며 전체 50점 만점 중 40점 이상을 받으면 1등급, 39~35점은 2등급, 34~30점을 받으면 3등급을 받는 식으로 바뀌었다. 성적표에는 점수 대신 등급이 표기되어 50점부터 40점까지 모두 1등급으로 표기된다.

 대학 입시에서도 한국사에 큰 비중을 두지 않는다. 수시 모집의 경우 상위권 대학에서도 한국사 과목은 3등급(30점) 혹은 4등급(25점) 이상만 받으면 수능 최저 등급 기준을 충족한 것으로 인정해 준다. 정시 모집의 경우에도 마찬가지로 3등급에서 4등급만 넘으면 한국사 점수에서 감점되는 일은 없다. 지난해 수능을 기준으로 한국사 과목에서 3등급 이상을 받은 학생은 56.61%, 4등급 이상을 받은 학생은 전체의 72.76%로 절반 이상의 학생이 입시 과정에서 한국사로 인한 감점을 받지 않은 셈이다.

 한국사 과목의 난이도와 입시 비중이 급락한 것을 이해하기 위해 선택 과목 시절이던 2005~2016학년도 수능 당시의 기형적인 한국사 과목 응시 구조를 이해할 필요가 있다.

 

 한국사가 필수 과목으로 지정되기 이전에는 사회탐구 과목에 속해있어 10여 개의 과목 중 선택 응시가 가능했다. 그러나 2005년 서울대가 한국사를 필수 반영 과목으로 지정한 후 수능에서 한국사를 선택하는 비율은 꾸준히 감소했다. 서울대를 지망하는 최상위권 학생들이 한국사를 필수적으로 응시하여 한국사 과목 응시 집단의 수준이 상승했고, 이에 따라 변별력을 높이기 위해 문제가 어려워짐에 따라 난이도는 높지만 좋은 등급을 받기는 어려운 과목이 되었기 때문이다.

 이 시기 한국사 과목에서 좋은 등급을 받기 위해서는 교과서의 모든 내용을 연도까지 외워야 할 정도였다는 우스갯소리도 있었다. 그러나 악명 높은 난이도에도 불구하고 필수 과목으로 지정되기 직전 3년간 수능에서는 1등급을 받기 위해 50점, 47점, 50점을 받아야 할 정도로 높은 등급 컷을 유지했다. 서울대를 지망하지 않는 학생은 굳이 고래 싸움에 새우 등 터지기 보다 다른 사회탐구 과목을 선택하는 것이 효율적이기 때문에 한국사는 기피 과목이 되어갔다.

 

 해가 갈수록 낮아지는 한국사 응시율이 논란이 되자 2017학년도 수능부터 모든 응시자가 한국사를 필수 응시하도록 규정이 바뀌었다. 이때부터 한국사는 변별을 위한 과목에서 우리 역사에 대한 기본 소양을 평가하기 위한 과목으로 바뀌었고 그 의도에 따라 수험 부담을 최소화할 수 있도록 쉽게 출제되고 있다. 마치 대학교의 교양 과목처럼 말이다.

 한국사가 필수 과목으로 지정됨에 따라 학교와 학원 등 교육 현장에서도 대부분의 수험생이 1주일에 1시간 정도는 머리를 식히며 한국사 수업을 들을 수 있도록 바뀌었다. 비록 이를 필요 없는 시간으로 치부해 자습을 하는 학생도 간간이 있지만 서울대를 응시하는 수험생만 한국사 공부를 하던 지난날보다는 보다 많은 학생들이 한국사를 공부하게 되어 긍정적인 변화를 이끌어냈다고 볼 수 있다.

 

 이러한 맥락에서 바라보면 한국사 과목의 쉬운 난이도는 입시 부정도, 변별력 상실도, 정치적 이유도 아닌 출제 의도에 부합하는 정상적인 변화일 뿐이다. 오히려 논란이 되어야 할 대상은 수능 문제가 아닌 이를 두고 전후 맥락에 대한 설명을 빠뜨린 채 자극적인 보도를 쏟아내는 일부 언론일 것이다. 앞으로는 논란에 대한 단편적인 보도 보다 그 속에 담겨있는 본질을 제대로 보도할 수 있길 바라본다.

 

저작권자 © 자투리경제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