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산시의 월명산 자락 북쪽 끝에 자리한 해망령을 관통하는 터널

248. 군산 해망굴

쌀 수탈의 한이 어린 통로 – 전북 군산 해망굴.구 군산시청 앞의 중앙로(구 명치정통)는 군산 원도심을 동서로 연결하는 도로이다. 중앙로의 서쪽 끝에 해망령(海望嶺)이 있는데 일제는 군산시내와 수산물의 중심지인 해망동(현 해신동), 미곡을 반출하던 군산 내항을 연결하기 위해 해망령에 터널을 만들었다. 1926년 제3차 군산항 축항공사가 벌어졌는데 이때 해망굴(海望堀)도 함께 건설되었다. 해망굴 공사는 돌산을 깨서 만드는 난공사여서 인부 10여 명이 사망했는데 일제는 희생된 조선인 인부의 시신조차 제대로 수습하지 않았다. 이에 군산 노동운동의 대부이자 독립운동가인 조용관 선생이 투쟁을 벌여 장례를 치를 수 있었다고 한다. 한국전쟁 중에는 군산에 주둔했던 인민군의 지휘본부가 연합군의 공습을 피하기 위해 해망굴에 설치되기도 했다. 근대기에 만들어진 군산의 대표적 토목 구조물인 해망굴은 2005년 6월 18일 등록문화재 제184호로 지정되었다.Photo by 최영규
쌀 수탈의 한이 어린 통로 – 전북 군산 해망굴. 옛 군산시청 앞의 중앙로(구 명치정통)는 군산 원도심을 동서로 연결하는 도로이다. 중앙로의 서쪽 끝에 해망령(海望嶺)이 있는데 일제는 군산시내와 수산물의 중심지인 해망동(현 해신동), 미곡을 반출하던 군산 내항을 연결하기 위해 해망령에 터널을 만들었다. 1926년 제3차 군산항 축항공사가 벌어졌는데 이때 해망굴(海望堀)도 함께 건설되었다. 해망굴 공사는 돌산을 깨서 만드는 난공사여서 인부 10여 명이 사망했는데 일제는 희생된 조선인 인부의 시신조차 제대로 수습하지 않았다. 이에 군산 노동운동의 대부이자 독립운동가인 조용관 선생이 투쟁을 벌여 장례를 치를 수 있었다고 한다. 한국전쟁 중에는 군산에 주둔했던 인민군의 지휘본부가 연합군의 공습을 피하기 위해 해망굴에 설치되기도 했다. 근대기에 만들어진 군산의 대표적 토목 구조물인 해망굴은 2005년 6월 18일 등록문화재 제184호로 지정되었다.Photo by 최영규

 

군산시의 월명산 자락 북쪽 끝에 자리한 해망령을 관통하는 터널로, 수산물의 중심지인 해망동과 군산시내를 연결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1926년에 시작된 제 3차 축항공사를 통해 화물하차장 확대, 부잔교 추가설치, 창고건설 등이 수행되었고 해망굴도 이 과정에서 완공된 것이다.

 

해망굴은 옛 군산시청 앞 도로인 중앙로와 수산업의 중심지인 해망동을 연결하기 위해 1926년 건립한 반원형 터널(높이 4.5m 길이 131m)로, 근대 도시 군산의 모습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토목 구조물이다. 일제강점기에는 군산신사와 신사광장(현 서초등학교), 공회당, 도립군산의료원, 안국사(현 흥천사) 등이 인근에 있어서 사람들의 통행이 빈번한 교통의 요충지였으며, 한국전쟁 중에는 군산 주둔 북한군 지휘본부가 터널 안에 자리하여 연합군 공군기의 공격을 받았던 현대사의 중요한 역사의 현장이다.

 

자료 출처

1. 군산시 문화관광

https://www.gunsan.go.kr/tour/m2229

2. 문화재청, 국가문화유산포털

http://www.heritage.go.kr/heri/cul/culSelectDetail.do?ccbaCpno=4413501840000&pageNo=1_1_1_1

3. 역사문화유산

https://ncms.nculture.org/legacy/story/1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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