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년 후의 나와 대면하다"

공존과 소통(CO-Exist & COMmunication) 50대와 20대

내가 살고 있는 동네에 날벼락같은 이슈가 생겼다. 토지개발 예정 후보지로 갑자기 발표된 것이다.

처음 보는 동네 어른이 오셔서 개인의 재산권을 침해하는 정부기관의 일방적인 진행을 취소시켜야 된다고 함께 할 것을 요청하셔서 합류했다. 그 뒤에 킥 오프(kick-off) 같은 첫 모임을 동네 광장에서 가졌다. 단독주택, 빌라의 대표 세대주, 상가건물주 등이 나오셨다.

8년째 살고 있지만 다들 초면이다. 윗 블럭 큰 집 주인아저씨, 벽돌이 예쁜 오래된 빌라 아주머니, 건너 편 새로지은 상가주택 사장님 등등.

대부분 80대 전후인 이분들 앞에서 50대인 나는 저절로 청년이 되어 버렸다. 지팡이를 짚고 오신 곧 90살이 된다는 분께서 이번 정부발표에 대한 부당함과 문제점을 간결하고 명료하게 지적하셨고 무조건 찬성하는 주민과 잘못알고 있는 주민을 위한 설명과 설득자료는 A4 한장을 넘지 않도록, 될수록 간결하게 정리해야 한다고 하셨다.

'헉! 이건 회사에서 회의를 효율적으로 진행하며 효과적인 방법을 이끌어 내는 리더의 모습?!' 

오시자마자 일단 앉고 그 자리에서 해산전까지는 절대 움직이지 않으셔서 흩어져 있던 50-60대를 저절로 불러 들이는 80대들이었으나 입을 열자 이 분들의 내공에 깜짝 놀랐다. 

본인들은 뒤에서 물심양면 도울테니 50대인 우리보고 회장을 맡아 전면에 나서라 하셨지만 회사재직 때문에 어렵다고 극구사양. 대신 총무를 맡았다. 결국 70대 분이 이 모임의 회장을 맡으셨다. 회장님께 각종 소식, 자료 공유를 위해 단톡방개설을 요청했고 자연스럽게 세대별 효율적인 업무분담이 시작됐다.

 

△ 80대: "열려라, 대문" 가가호호 대면작업. 보통 40~60년 가까이 동네에서 살고 계신 분들이라 모르는 건물주, 세입자가 없다. 정부가 주도하는 사업의 일방적 강행과 부당함을 알리고 정확한 사실을 전달하여 주민들의 동의를 얻는 일을 전담하셨다. 

회장을 맡은 70대 분은 지난 세월 다양한 지역사회 활동을 통해 관할구청 담당자들을 잘 알고 있었고, 차분하고 논리적으로 일을 처리하는 법에 익숙했다. 돌발상황에 대처하는 능력과 이해력이 뛰어나다. 재밌는건 80대 분들은 직접 만나 얼굴 보고 얘기하는 것을 선호한다. 

동네에서 거짓으로 주민을 호도하고 무조건 찬성표를 모으는 작업을 하는 사람을 기가 막히게 찾아 내고 증거가 될 만한 불법전단지를 회수해 왔다. 그리고 대표 어른 몇 분이 그 당사자를 찾아가 사람들에게 거짓말하고 다니면 안된다고 단단히 주의를 주셨다고 한다. 

△ 50대: 관련 이슈 및 뉴스 등을 신속히 정리해서 업데이트된 문서를 단톡방에 꾸준히 올린다. 거짓으로 호도하는 사람의 언변에 넘어가 무조건 찬성하는 주민들이나 정확한 내용을 알고 싶어하는 주민을 위한 문서를 작성한다. 

 

대면방법 위주의 익숙한 80대와 달리 자주 모이기보단 이메일, 직접 방문등을 대면과 비대면을 활용하여 사안에 따라 관련 기관, 관할구청에 서면질의, 직접 방문을 하고 청원사이트 등 다양한 채널을 통해 일을 처리한다. 타 지역에서의 문제해결 과정을 모니터링하여 80대 세대들에서는 시도해 보지 못한 방법도 제시한다.

이번 이슈를 해결하기가 결코 쉽지 않고 어쩌면 긴 싸움이 될 수도 있을 것 같다. 하지만 80대 분들과 함께 일을 도모하고 방법을 찾는 과정에서 어느 세대못지 않게 단단하고 추진력있는 그 분들의 내공을 체험하는 의미있는 시간이 될 거 같다. 어쩌면 30년 후의 나와 함께 하는 시간이란 생각마저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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