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투리 여행 이야기 – 쵸이 발자취(61)] 유네스코 세계유산 '안동 병산서원'
[자투리 여행 이야기 – 쵸이 발자취(61)] 유네스코 세계유산 '안동 병산서원'
  • [자투리경제=최영규 SNS에디터]
  • 승인 2021.06.28 08:5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제61회. 유네스코 세계유산 '안동 병산서원'

 

한국의 서원은 조선시대 성리학 교육 시설의 한 유형으로, 16세기 중반부터 17세기 중반에까지 향촌 지식인인 사림에 의해 건립됐다. 이 유산은 교육을 기초로 형성된 성리학에 기반한 한국 사회 문화 전통의 특출한 증거다. 이 유산은 동아시아 성리학 교육기관의 한 유형인 서원의 한국적 특성을 나타낸다.

한국의 서원은 조선시대 명현을 제사하고, 인재를 교육하기 위 해 전국에 세운 사설 기관으로, 유교문화의 핵심이 되는 양반사회와 그 정신문화가 담겨 있다. 조선 시대의 지배 계층인 유가의 사림의 활동 기반으로서 국가 경영과 사회운영을 논하는 경륜을 펼친 곳이다. 현재 637개 서원이 남아있으며, 그 중 지금도 잘 보존 관리된 9개의 서원은 매우 높은 문화유산적 가치를 가지고 있다.

그 중 지금도 잘 보존 관리된 9개의 서원은 매우 높은 문화유산적 가치를 가지고 있다. 9개의 서원은 경상북도 영주시의 소수서원, 경상남도 함양군의 남계서원, 경상북도 경주시의 옥산서원, 경상북도 안동시의 도산서원, 전라남도 장성군의 필암서원, 대구광역시 달성군의 도동서원, 경상북도 안동시의 병산서원, 전라북도 정읍시의 무성서원, 충청남도 논산시의 돈암서원 등이 있다.

 

병산서원

역염선사(力念善事) 힘을 다하여 선한 일만 생각하고,

역행선사(力行善事) 힘을 다하여 선한 일만 행하여라.

 

사진; 최영규
사진=최영규

 

사진; 최영규
사진=최영규

 

병산서원은 고려 중기부터 안동 풍산에 있던 교육기관인 풍악서당(風岳書堂)에서 비롯됐다. 지방 유림의 자제들이 모여 공부하던 곳으로, 고려 말 공민왕 때 홍건적의 난이 일어나 왕의 행차가 풍산을 지날 무렵, 풍악서당의 유생들이 난리 중에서도 학문에 열중하는 것을 보고 왕이 크게 감동하여 많은 서책과 사패지(賜牌地)를 주어 유생들을 더욱 학문에 열중하도록 격려했다.

200년이 지나면서 서당 가까이에 가호가 많이 들어서고 길이 생기며, 차츰 시끄러워지면서 유림들이 모여 서당을 옮길 곳을 물색하는 중에 서애 류성룡 선생께서 부친상을 당하시고 하회에 와 계실 때 그 일을 선생에게 문의하니, 서애 선생께서 병산이 가장 적당할 것이라고 권하게 됐고 유림들은 선생의 뜻에 따라 1575년(선조 ) 서당을 병산으로 옮기고 ‘병산서원’이라고 고쳐 부르게 됐다.

사진; 최영규
사진; 최영규

 

1614년(광해 6)에 우복 정경세, 창석 이준, 동리 김윤안, 정봉 안담수 등 문인들이 선생의 학문과 덕행을 추모하기 위해 존덕사를 창건해 선생의 위판을 봉안했다. 선생의 위판은 1620년(광해12) 합향하는 과정에서 여강서원(주향 퇴계 이황)으로 옮겼다가 1629년(인조 7)에 다시 병산에 복향했다. 당시 서애 선생의 위판을 여강서원과 병산서원에 봉안하는 문제를 두고 '일읍양원병향(一邑兩院竝享)'과 '일읍봉안(一邑奉安)'등 의견이 있었으나 주자의 예에 따라 한 고을 두 서원에 병향해도 무방하다 하여 두 서원에 병향하게 됐다.

1662년(현종 3)에 선생의 셋째아들인 수암 류진(柳袗, 1582-1635)공의 위패를 종향했다.

 

사진; 최영규
사진; 최영규

병산서원은 지방교육의 일익을 담당했고 많은 학자를 배출했으며, 1868(고종 5) 흥선대원군의 서원 철폐령이 내렸을 때에도 훼철되지 않고 존속한 47개 중 하나이다. (書院 27개, 祠 20개)

병산서원은 조선시대의 대표적인 유교 건축물로서 서애 류성룡(柳成龍, 1542~1607)선생과 그의 제자이며 셋째 아들 수암 류진(柳袗, 1582~1635) 공을 배향한 서원이다. 이곳은 서애 선생께서 31세 때인 1575년에 풍산 상리에 있던 풍악서당을 이곳으로 옮겨와서 제자들을 가르치던 곳으로 1607년 선생이 돌아가신 후 묘우(尊德祠)를 짓고 선생의 위판을 모셨으며, 매년 봄ㆍ가을 향사를 받들면서 서원으로 승격됐다. 그 후 철종 14년(1863)에 병산서원으로 사액 받았으며, 흥선대원군의 서원철폐령에도 훼철되지 않은 전국 47개 서원 중 하나다. 사적 제 260호로 지정돼 있으며, 한국의 서원으로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된 서원이다.

 

자료 출처

1.한국의 서원 통합보존관리단

http://k-seowon.or.kr/

2. [네이버 지식백과] 한국의 서원 [Seowon, Korean Neo-Confucian Academies] (유네스코 세계유산, 세계유산센터(영/불어 원문))

3. 문화재청

http://www.cha.go.kr/html/HtmlPage.do?pg=/heritage/world_heritage/provisional_list_14.jsp&mn=NS_04_04_02


관련기사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