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투리 여행 이야기 – 쵸이 발자취(77)] 신라 선덕여왕릉
[자투리 여행 이야기 – 쵸이 발자취(77)] 신라 선덕여왕릉
  • [자투리경제=최영규 SNS에디터]
  • 승인 2021.10.02 16: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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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7. 신라 선덕여왕릉

경주 선덕여왕릉 전경.  사진; 최영규
경주 선덕여왕릉 전경. 사진=최영규

 

신라 최초의 여왕이자 27대 왕인 선덕여왕(재위 632647)의 무덤이다. 높이 6.8m, 지름 23.6m의 둥글게 흙을 쌓은 원형 봉토무덤으로, 밑둘레에 자연석을 이용하여 23단의 둘레돌을 쌓았다.

선덕여왕은 아들이 없던 진평왕(재위 579632)의 딸로서 어릴때부터 총명하여 나라의 일을 같이 보는 등 아들이 없던 진평왕은 선덕여왕을 일찍이 눈여겨보곤 했다. 첨성대와 분황사, 황룡사 9층탑 등을 세웠으며, 김유신, 김춘추와 더불어 삼국통일의 기초를 닦았다.

 

경주 선덕여왕릉.  사진; 최영규
경주 선덕여왕릉. 사진=최영규

 

경주 선덕여왕릉 비석.  사진; 최영규
경주 선덕여왕릉 비석. 사진=최영규

 

삼국사기에 따르면 여왕이 죽거든 부처의 나라인 도리천에 묻어 달라고 하였으나 신하들이 이해를 못하자 여왕이 직접 도리천이 낭산(狼山) 정상이라 알려주었다. 문무왕이 삼국통일을 한 후 낭산에 사천왕사를 지었고, 낭산의 정상이 도리천이라 한 여왕의 뜻을 알게 되었다고 전해진다.

참고로 경주 낭산은 남북으로 길게 누에고치처럼 누워 양쪽에 각각 봉우리를 이루었다. 산허리는 잘록하며 높이는 108m로 그다지 높지않은 부드러운 능선을 이루고 있다.예로부터 서라벌의 진산(鎭山)으로 불리며 신성스러운 산으로 여겨졌다. 산자락에는 거문고의 명인 백결(百結)선생이 살았으며 최치원(崔致遠)이 공부하던 독서당(讀書堂)도 있다. 남쪽 능선 아래쪽에는 호국사찰로 알려진 신라 향가의 현장 사천왕사터가 있다.

(신라선덕여왕릉 경주 선덕여왕릉)으로 명칭이 변경 되었다.(2011.07.28 고시)

 

자료 출처

Wikipedia

https://ko.wikipedia.org/wiki/%EC%84%A0%EB%8D%95%EC%97%AC%EC%99%95%EB%A6%89

국가문화유산포털

http://www.heritage.go.kr/heri/cul/culSelectDetail.do?ccbaCpno=1333701820000&pageNo=1_1_2_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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