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 신라 천년의 고찰

83. 영주 부석사와 무량수전

부석사

부석사(浮石寺)는 신라 문무대왕 16(676)에 의상이 왕명을 받아 세운 화엄종 사찰로, 경상북도 영주시 부석면 봉황산 중턱에 있다.

부석사는 특히 의상이 화엄의 큰 가르침을 베풀던 곳으로, 의상을 '부석존자'라 하고, 그가 창시한 화엄종을 '부석종'이라 하는 것도 여기에서 유래한다. 1372(공민왕 21)에 주지가 된 원응국사(圓應國師)에 의해 많은 건물들이 다시 세워졌다. 부석사에는 몇 안 되는 고려 시대 건축물인 부석사 무량수전이 유명하다. 무량수전 외에도 부석사에 많은 문화재들이 존재한다. 2018, '산사, 한국의 산지승원' 이라는 명칭으로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되었다.

 

부석(浮石)

부석에 관해 전해 내려오는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있다. 신라 문무대왕 1(661) 의상 대사가 화엄학을 공부하기 위해 당나라에 갔을 때 의상 대사를 연모한 선묘라는 여인이 있었다.

의상 대사는 중국 장안에 있는 종남산 지상사의 지엄삼장에게서 10년간 화엄의 도리를 배우고 깨달음을 얻은 후 귀국길에 올랐다. 뒤늦게 소식을 들은 선묘가 부두로 달려갔을 때 대사가 탄 배는 이미 사라지고 없었다. 선묘는 바다에 몸을 던져 용으로 변신하여 의상 대사가 탄 배를 호위하여 무사히 귀국하게 하였다.

그 후 의상 대사가 화엄의 도리를 널리 펴기 위하여 왕명으로 이곳 봉황산 기슭에 절을 지으려고 할 때, 이곳에 살고 있던 많은 이교도들이 방해하였다. 이때 선묘 신룡이 바위를 공중으로 들어 올리는 기적을 보여 이교도를 물리쳤다. 그리하여 이 돌을 '부석'이라 불렸으며 사찰 이름을 '부석사'라고 불렀다고 한다.  그 후 선묘 신룡은 부석사를 지키기 위해 석룡으로 변신하여 무량수전 뜰아래 묻혔다는 이야기가 전해오고 있다조선 영조 때 이중환의 '택리지'에는 "위아래 바위 사이에 약간의 틈이 있어 줄을 넣어 당기면 걸림 없이 드나들어 떠있는 돌임을 알 수 있다"고 적고 있다.

 

영주 부석사 무량수전(榮州 浮石寺 無量壽殿) 옆에 위치하고 있는 부석.    사진=  최영규
영주 부석사 무량수전(榮州 浮石寺 無量壽殿) 옆에 위치하고 있는 부석. 사진= 최영규

 

영주 부석사 무량수전(榮州 浮石寺 無量壽殿)

영주 부석사 무량수전은 1376년에 중수된 목조 건축물로 대한민국의 국보 제18호이다. 경북 안동의 봉정사 극락전과 함께 한국에서 가장 오래된 목조 건축물이다. 정확한 건조 연대는 알 수 없으나 고려 중기 후반경의 건축물로 추측된다.

봉황산 중턱에 있는 부석사는 신라 문무왕 16(676)에 의상대사가 왕명을 받들어 화엄의 큰 가르침을 펴던 곳이다. 무량수전 뒤에는 부석(浮石)’이라고 새겨져 있는 바위가 있다. 무량수전은 부석사의 중심건물로 극락정토를 상징하는 아미타여래불상을 모시고 있다. 신라 문무왕(재위 661681) 때 짓고 고려 현종(재위 10091031) 때 고쳐 지었으나, 공민왕 7(1358)에 불에 타 버렸다. 지금 있는 건물은 고려 우왕 2(1376)에 다시 짓고 광해군 때 새로 단청한 것으로, 1916년에 해체·수리 공사를 하였다.

 

무량수전은 부석사의 중심건물로 극락정토를 상징하는 아미타여래불상을 모시고 있다.   사진=  최영규
무량수전은 부석사의 중심건물로 극락정토를 상징하는 아미타여래불상을 모시고 있다. 사진= 최영규

 

규모는 앞면 5·옆면 3칸으로 지붕은 옆면이 여덟 팔()자 모양인 팔작지붕으로 꾸몄다. 지붕 처마를 받치기 위해 장식한 구조를 간결한 형태로 기둥 위에만 짜올린 주심포 양식이다. 특히 세부 수법이 후세의 건물에서 볼 수 있는 장식적인 요소가 적어 주심포 양식의 기본 수법을 가장 잘 남기고 있는 대표적인 건물로 평가 받고 있다. 건물 안에는 다른 불전과 달리 불전의 옆면에 불상을 모시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무량수전은 부석사의 중심건물로 극락정토를 상징하는 아미타여래불상을 모시고 있다.   사진=  최영규
무량수전은 부석사의 중심건물로 극락정토를 상징하는 아미타여래불상을 모시고 있다. 사진= 최영규

 

무량수전은 한국에 남아 있는 목조 건물 중 안동 봉정사 극락전(국보 제15)과 더불어 오래된 건물로서 고대 사찰건축의 구조를 연구하는데 매우 중요한 건물이다.

 

무량수전과  석등.  사진=  최영규
무량수전과 석등. 사진= 최영규

 

 

영주 부석사 무량수전 앞 석등.   사진=  최영규
부석사 무량수전 앞 석등(국보 제17호).    사진= 최영규

 

석등은 불을 켜서 어두운 곳을 밝히는 돌로 만든 등으로 광명등이라고도 한다. 보통 대웅전이나 탑 앞에 석증을 세운다. 석등은 불을 밝혀두는 화사석(火舍石)을 중심으로 아래에는 받침들이 있고 위에는 지붕들과 머리 장식이 얹혀 있는 구조이다.

무량수전 앞 석등은 맨 아래에 네모난 바닥들이 있고 그 위에 3단의 받침돌, 화사석, 지붕들이 차례로 놓여있는 모습이다. 바닥돌의 옆면에는 꽃 모양의 장식을 새겼다. 바닥돌 위에 있는 아래받침돌에는 큼직한 8개의 연꽃잎을 표현하였다. 아래받침돌 위에 놓인 팔각기둥 받침들은 굵기와 높이에서 매우 아름다운 비례를 보인다. 팔각기둥 위에 있는 윗바침들에는 부드러운 연꽃잎 8개를 새겼다. 8각의 화사석은 불빛이 나오도록 4개의 창을 만들었고, 창이 없는 나머지 4개 면에는 세련된 모습의 보살상을 새겼다. 지붕들 역시 8각이며 모서리 끝이 살짝 들려 있는 모습이다. 지붕들 위에는 머리 장식의 일부만이 남아있다. 석등 앞에는 향을 피우는데 사용하는 향로를 놓았던 배례석이 있다.

무량수전 앞 석등은 통일신라시대 석등 가운데 가장 아름다운 석등중 하나로서 각 부분의 정교한 조각 솜씨와 전체적인 비례감이 매우 아름답고 조화로우며, 화려한듯하면서도 단아한 멋을 지니고 있어 통일신라의 석조 예술 수준을 가늠해 볼 수 있는 귀중한 석등이다.

 

부석사  범종루.   사진=  최영규
부석사 범종루. 사진= 최영규

 

 

 

부석사 경내의 석벽에 아름답게 변한 단풍들이 가을이 무르익음을 말하고 있다.   사진=  최영규
부석사 경내의 석벽에 아름답게 변한 단풍들이 가을이 무르익었음을 알려주고 있다. 사진= 최영규

 

자료 출처

 

Wikipedia

https://ko.wikipedia.org/wiki/%EC%98%81%EC%A3%BC_%EB%B6%80%EC%84%9D%EC%82%AC_%EB%AC%B4%EB%9F%89%EC%88%98%EC%A0%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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