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투리경제 친환경 연중기획 "지구는 생물과 무생물이 공존하는 하나의 생명체"

'지구는 생물과 무생물이 공존하는 하나의 생명체이고 자신을 스스로 조절하는 존재다'

영국의 대기 화학자 제임스 러브록(James E. Lovelock)이 지난 1969년 발표한 '가이아 이론(Gaia Theory)'이다. 지구에 생명체가 탄생한 이후 45억년 동안 생물과 무생물이 복잡하고 서로 상호 작용하면서 일정한 환경을 유지해왔다. 하지만 인간이 야기한 환경문제 등으로 자기 조절 능력이 떨어지면서 대지의 여신인 가이아의 숨통을 막게 되고 결국 지구는 쇠락의 길을 걷게 된다.

성장이라는 명목 아래 이뤄지는 무분별한 개발과 끝없이 화석연료를 사용한 결과 지구는 뜨거운 탄소 쓰레기장이 돼가고 있다. 자투리경제는 [대지의 여신 '가이아'와 공존경영] 시리즈를 통해 자연과의 공존 방안과 ESG(Environment· Social· Governance)경영의 현주소 및 전망, 보완할 점 등을 진단한다. <편집자 주>


환경오염 문제가 날로 심각해지지만 그 피해는 고스란히 사회적 약자들에게 돌아간다. 빈민층 주거지와 소수 인종이 사는 지역에 폐기물 처리장이 들어서는 경우가 많다.

세계 인구의 20% 정도 밖에 안되는 선진국 사람들이 전 세계 자원의 80%를 소비하고 있다. 미국과 일본, 한국 등 산업화가 많이 진행된 나라들의 피해가 고스란히 사회적 약자나 환경적 약자에게 떠넘겨진다. 

섬나라 투발루는 지구의 기온이 올라가면서 해수면이 높아져 국토가 계속 가라앉고 있다. 또 지구 온난화로 빙산이 녹으면서 북극곰들은 생명의 위협을 받고 있다.

개발이 이뤄졌을 때 그 이익은 그 지역민들 몫이 아니다. 일부 개발자와 땅 소유주들만 이익을 챙기게 된다. 이같이 무분별한 개발과 환경 오염으로 인해 노동자나 공장 주변 주민들이 피해를 입는 일, 광산 등 대규모 개발 등으로 인한 피해 등을 환경 정의(Environmental Justice: 環境 正義)의 반대 개념인 환경 부정의(否正義)라고 칭한다. 

환경 정의란 환경 오염의 영향이 가난한 사람, 힘없는 사람 등 사회적 약자나 환경적 약자에게 집중돼서는 안되는 것을 바탕으로 공평한 환경을 추구하는 개념이다. 즉 사회적 약자도 환경적 약자도 공평한 환경권을 가져야 한다는 것이 환경 정의의 핵심이다.

◆ 무분별한 광산 개발에 멍드는 아마존

'지구의 허파'로 불리는 아마존 열대우림에서 무분별하게 광산 개발이 이뤄지면서 원주민의 땅이 대규모로 파괴되고 있다. 불법적으로 이루어지는 광산 개발 활동이 아마존 열대우림의 강과 사람을 오염시키고 있으며, 이 지역의 전통적인 공동체에 대한 폭력과 약탈을 부추기고 있다는 지적이다.

특히 브라질 북부 호라이마주에 있는 '하포자 세하 두 소우' 원주민 보호구역이 광산 개발 활동으로 현재 심각하게 훼손되고 있다. 이 지역은 울창한 삼림을 비롯해 자연경관이 뛰어나고 원주민 공동체가 비교적 잘 보존돼 있어 호라이마주의 대표적인 관광지 가운데 하나로 꼽히는 곳이다.

앞서 아마존 열대우림에서 가장 규모가 큰 원주민 공동체인 야노마미 부족민들은 지난해 9월 유엔을 찾아가 브라질 정부가 불법 광산개발 활동을 장려하면서 원주민의 생존을 위협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야노마미 거주지역에서 활동하는 불법 광산개발업자는 2만5000 명 정도로 추산된다.  환경 전문가들은 아마존 열대우림에서 이뤄지는 광산 개발이 자연과 사람을 오염시키고 폭력과 약탈 부추긴다는 주장을 제기하고 있다.

어느 지역을 개발했을 때 누군가는 이익을 얻고 누군가는 피해를 입는다. 이것이 환경 비용 부담의 차원에서도 공평하지 않다. '환경 정의'는 이런 불평등을 극복하고 환경 앞에서 누구나 공평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어느 지역을 개발했을 때 누군가는 이익을 얻고 누군가는 피해를 입는다. 이것이 환경 비용 부담의 차원에서도 공평하지 않다. '환경 정의'는 이런 불평등을 극복하고 환경 앞에서 누구나 공평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 극심한 환경 불평등…사회적 약자에게 피해 집중

대부분 난개발로 인한 자연 생태계 훼손, 생계 수단 파괴, 공기오염과 수질오염 피해는 개발자가 아닌 남겨진 사람들이 입게 된다. 도시 개발로 인해 원주민들이 다른 지역으로 내몰리는 '젠트리피케이션(둥지 내몰림)'도 같은 맥락이다.
 
1982년 벤저민 체이비스(Benjamin Chavis) 목사는 저소득층이나 소수 민족이 국가의 환경 오염 피해를 집중적으로 받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후 노동자들과 유색인종을 중심으로 환경 불평등을 해결하기 위한 방안을 마련하고 실행하려는 움직임이 활발해졌는데, 이것이 환경정의 운동의 시작이었다.

우리나라 환경 정의 운동의 시작은 1992년에 열린 유엔환경개발회의의 영향을 받아 경제정의실천연합의 부설기구로 만들어진 환경개발센터가 1998년 독립하면서 환경 정의 실천 연대로 이름을 바꾸고 본격적인 환경 정의 운동을 시작했다.

환경 정의를 실현해야 하는 이유는 현재 지구 위에 살고 있는 사람들 외에 후대 자손들에게도 심대한 영향을 미친다는 점이다. 또한 환경오염이 심해지면서 생물 다양성도 크게 위협받고 있다. 

당장은 사회적 약자들에게 직접적인 피해가 가지만 오염된 땅과 공기가 사라지지 않고 지구 생태계 안에서 돌고 돈다는 점에서 결국은 지구 위 모든 사람들이 피해자가 된다는 점이다. 

지속 가능 발전은 미래 세대의 욕구를 충족시킬 수 있는 능력을 위태롭게 하지 않으면서 현 세대의 욕구를 충족시키는 발전을 의미한다. 현재 지구에서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과 앞으로 태어날 후손들 모두가 골고루 잘살 수 있도록 자원을 사용하고 건강하게 유지시켜야 한다. 

◆ 모두가 건강한 환경 조성 '지속 가능 발전' 

1972년 6월 스웨덴의 수도 스톡홀름에서 환경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유엔 인간 환경 회의라는 국제회의가 열렸다. 이 회의에서 영국의 경제학자이자 작가인 바버라 워드(Barbara Ward)는 환경의 제약을 고려하지 않고서는 경제 발전을 지속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면서 '지속 가능성'이란 표현을 사용했다. 이후로 환경과 관련한 여러 회의에서 지속 가능성 또는 지속 가능한 삶이란 말이 등장했다. 

지금 나만 잘살기 위해 자연자원과 환경을 마구잡이로 파괴하면서 발전할 것이 아니라 나보다 상황이 열악한 사람들도 어려움 없이 살 수 있도록 배려하고 더불어 아직 태어나지 않은 후손들까지 생각하면서 발전의 방향을 잡아야 하는 것이 지속 가능 발전(Sustainable Development)이다. 

무조건 첨단 기술을 개발하는 것이 능사는 아니다. 지구와 인류를 위한 기술, 그리고 각 지역에 맞는 기술이 개발돼야 하고 그 기술로 지구의 모든 사람이 골고루 만족스럽게 살 수 있어야 한다.

미래 세대도 우리 세대도 모두 잘 살려면 미래 세대가 쓸 자원을 남겨두고 그들이 깨끗한 환경에서 살 수 있도록 지나친 개발을 억제해야 한다. 지속가능한 발전은 바람직한 발전을 추구한다. 그것은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반드시 나아가야 할 방향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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