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용진 신세계그룹 회장과 이명희 신세계 총괄회장. 사진=신세계
정용진 신세계그룹 회장과 이명희 신세계 총괄회장. 사진=신세계

지난 8일 정용진 신세계그룹 부회장이 그룹 회장으로 승진했다. 지난 2006년 부회장에 오른 지 18년 만이다. 신세계그룹측은 이번 인사배경에 대해 "정 회장을 중심으로 빠르게 바뀌는 환경을 정면 돌파하기 위한 결정"이라고 밝혔다. 

그런데 인사 배경 내용이 다소 식상하다. 뭔가 새로운 메시지가 있는 것이 아니라 관례적인 표현이다. 지금처럼 어려운 상황에서 위기 돌파는 누구나 할 수 있는 얘기다.

또 이번 승진 배경에는 뭔가 탐탁지 않은 구석이 있다. 정 회장이 잘해서 회장으로 오른 게 아니라 회장 직함을 줄터니 제대로 잘해보라고 한 것이라는 것 아니냐는 해석이 나온다.

정 회장은 지난 2013년 사내이사직을 그만둔 후 등기임원에서 손을 뗀 상태다. 이런 상황에서 직급만 회장으로 올라갔을 뿐 책임지는 위치에 있지 않다. 명함만 바뀐 셈이다.

정 부회장 체제에서 무리한 인수·합병으로 덩치만 키웠지 내실경영과는 거리가 멀었다는 지적도 나온다. 실적 악화에 이마트 주가는 곤두박질 친 상태인데다 금융부채는 14조원에 이른다. 미국 와이너리, 골프장, 야구단 등 본업과 무관한 경우가 많았다. 이마트 주가는 최근 5년 사이 약 59%가량 하락했다.

이마트는 지난해 영업손실 469억원을 기록했다. 1993년 창립 이래 첫 적자전환이다. 매출 부문에서도 지난해 쿠팡에 역전당했다. 쿠팡 외에 알리익스프레스와 같은 외국 국적의 이커머스의 공세도 거세다.

이마트는 뒤늦게서야 예전의 명성을 되찾겠다며 오프라인 매장 확대 등을 꾀하고 있다. 이 작업을 주도하고 있는 사람은 정 회장이 아니라 한채양 이마트 대표다. 한채양 대표를 이마트 대표로 앉힌 사람은 정 회장이 아니다. 이명희 총괄회장이 내린 결정이다.

한국기업거버넌스포럼은 11일 논평을 내고 “그룹 전체 차입금 축소가 절실한데, 정 회장과 경영진은 심각성을 인식하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며 “승진보단 신음하는 이마트 주주에 대한 사과 및 기업 밸류업 대책을 내놓는 것이 옳지 않았냐”고 지적했다.

G마켓은 지난해 4분기에 8개 분기 만에 흑자 전환에 성공했지만, 여전히 연간 기준으로는 적자 상태다. SSG닷컴, 이마트24도 지난해 각 321억 원, 230억 원의 영업손실을 봤다.

이마트 주가는 지난 5년·10년 동안 각각 59%, 70% 하락했다. 같은 기간 코스피가 23%, 37% 상승한 것과 크게 대조된다. 이마트 주가 추이.
이마트 주가는 지난 5년·10년 동안 각각 59%, 70% 하락했다. 같은 기간 코스피가 23%, 37% 상승한 것과 크게 대조된다. 이마트 주가 추이.
신세계그룹은 신세계건설이 골프장 3곳을 포함한 레저부문을 1820억원에 매각하기로 했지만, 인수 주체는 외부가 아니다. 자회사인 조선호텔앤리조트다. 자금난에 허덕이고 있는 신세계건설에 자금을 대준 셈이다.
신세계그룹은 신세계건설이 골프장 3곳을 포함한 레저부문을 1820억원에 매각하기로 했지만, 인수 주체는 외부가 아니다. 자회사인 조선호텔앤리조트다. 자금난에 허덕이고 있는 신세계건설에 자금을 대준 셈이다. 신세계건설 주가 추이.

신세계그룹측은 실적이 부진한 최고경영자는 수시 교체하고, 성과에 따른 보상은 강화하는 등 새 핵심성과지표(KPI) 도입을 통해 '신상필벌 인사'를 강화하기로 했다. 1년에 한 번 연말에 정기 인사를 했던 것에 얽매이지 않고 실적이 부진하거나 경영상 오류가 발생하면 CEO를 포함한 임원진을 수시 교체하는 등 긴장감을 불어넣겠다는 취지다.

정용진식 위기대응 전략에 따라 주요 계열사 CEO들이 벌써 크게 긴장하고 있다. 누가 먼저 잘릴까 전전긍긍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다.

실적난에 빠진 그룹 계열사의 성과를 끌어올리기 위한 긴급 처방인데, 문제는 긴장감만 잔뜩 불어넣고 있다는 점이다.

신상필벌에는 벌도 있어야 하지만 과감한 인센티브 등 자발적인 혁신이 이뤄지도록 하는 내용이 포함돼야 하는데, 이 부분이 다소 미흡하다.

신세계의 힘의 균형추는 달라진 게 없다. 이명희 회장이 여전히 그룹 총괄회장을 맡고 있다. 일각에서는 만 80세인 이명희 총괄회장이 경영 전면에서 물러설만도 한데 여전히 그룹의 총수 자리를 지키고 있는 이유를 알아야 한다는 말이 나온다. 아직도 50대 아들이 미덥지 않다는 분석이 나온다.

이마트는 최근 오프라인 강화로 기조를 선회했다. 한채양 이마트 대표는 지난해 12월9일 창립 30주년 기념식에서 “본업 경쟁력을 강화하는 데 총력을 기울이겠다”며 "이마트의 영업 기반이자 주요 성장 동력인 점포의 외형성장에 방점을 찍고, 내년 5개 점포의 부지를 확보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사진은 이마트 하월곡점 내부. 자투리경제 사진 DB
이마트는 최근 오프라인 강화로 기조를 선회했다. 한채양 이마트 대표는 지난해 12월9일 창립 30주년 기념식에서 “본업 경쟁력을 강화하는 데 총력을 기울이겠다”며 "이마트의 영업 기반이자 주요 성장 동력인 점포의 외형성장에 방점을 찍고, 내년 5개 점포의 부지를 확보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사진은 이마트 하월곡점 내부. 자투리경제 사진 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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