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oi’s photo gallery(100)] 조선시대 건축의 걸작 '화홍문(華虹門)'과 수원 화성에서 가장 아름다운 정자 '방화수류정(訪華隨柳亭)'
[Choi’s photo gallery(100)] 조선시대 건축의 걸작 '화홍문(華虹門)'과 수원 화성에서 가장 아름다운 정자 '방화수류정(訪華隨柳亭)'
  • [자투리경제=최영규 SNS에디터]
  • 승인 2020.06.07 09: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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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     조선시대 건축의 걸작, 화홍문(華虹門)과 수원 화성에서 가장 아름다운 정자, 방화수류정(訪華隨柳亭)

화홍문. 화(華)는 화성을, 홍(虹)은 무지개를 뜻하는데 물보라가 수문을 넘쳐 흐르는 모습이 아름답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화홍문은 정조 18년인 1794년 2월에 공사를 시작하여 1795년 1월에 완성되었다고 한다. 화홍문을 만들게 된 계기는 수원 시내를 관통하는 수원천(버느내) 상류 부분에 전란에 대비한 방어시설이며, 또한 하천 범람을 막기 위한 역할을 한 곳이다.   화홍문은 건축학적 측면에서 한국건축의 걸작으로 꼽힌다. 화홍문에는 7개의 수문이 있고 그 위에 문루를 지었다. 수문은 모두 석조아치로 만들어 졌는데 가운데 한칸만 높이와 폭이 크고 나머지 6개의 수문은 크기가 모두 같다. 수문 바깥쪽으로는 과거에는 적의 침입을 막을 목적으로 철문을 설치했다고 하나 지금은 볼 수 없다.  Photo by  최영규
화홍문. 화(華)는 화성을, 홍(虹)은 무지개를 뜻하는데 물보라가 수문을 넘쳐 흐르는 모습이 아름답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화홍문은 정조 18년인 1794년 2월에 공사를 시작하여 1795년 1월에 완성되었다고 한다. 화홍문을 만들게 된 계기는 수원 시내를 관통하는 수원천(버느내) 상류 부분에 전란에 대비한 방어시설이며, 또한 하천 범람을 막기 위한 역할을 한 곳이다. 화홍문은 건축학적 측면에서 한국건축의 걸작으로 꼽힌다. 화홍문에는 7개의 수문이 있고 그 위에 문루를 지었다. 수문은 모두 석조아치로 만들어 졌는데 가운데 한칸만 높이와 폭이 크고 나머지 6개의 수문은 크기가 모두 같다. 수문 바깥쪽으로는 과거에는 적의 침입을 막을 목적으로 철문을 설치했다고 하나 지금은 볼 수 없다. Photo by 최영규

 

화홍문과 우측의 방화수류정(訪華隨柳亭). Photo by 최영규
화홍문과 우측의 방화수류정(訪華隨柳亭). Photo by 최영규

 

방화수류정(訪華隨柳亭). Photo by 최영규
방화수류정(訪華隨柳亭). Photo by 최영규

 

방화수류정(訪華隨柳亭). 사진출처; 수원화성박물관
방화수류정(訪華隨柳亭). 사진출처; 수원화성박물관

 

수원 화성에 있는 각루(角樓)는 동북각루, 서북각루, 서남각루, 동남각루 등 넷이다. 서남각루는 화양루(華陽樓)라하고, 동북각루(東北角樓)는 방화수류정(訪花隨柳亭)이라 한다. 방화수류정은 화성의 북수문인 화홍문(華虹門)의 동측 구릉 정상 즉 용연(龍淵) 남측에 불쑥 솟은 바위 언덕인 용두(龍頭) 위에 있다.(龍頭者卽淵上斗起之巖)

화성성역의궤(華城城役儀軌)에 용연은 북성 밖에 있는데 반달처럼 생긴 못으로 둘레가 210, 깊이 6척이며 못 가운데 작은 섬이 있다고 기록되어 있다. 못 위의 성 모서리에는 방화수류정이 있고, 못 서쪽에는 석각이두(石刻螭頭)가 있다고 기록되어 있다.

 

방화수류정은 조선 정조 18(甲寅,1794) 94일 진시(辰時)에 터다지기 공사에 착수하여 104일 묘시(卯時)에 정초를 하고 기둥을 세웠고, 7일 오시(午時)에 상량(上樑)하였으며, 1019일 완공하였다. 방화수류정 건립에 참여한 각 공장(工匠)의 편수(邊手)는 석수(石手) 서울() 김차봉(金次奉), 한산 최기득(崔貴得)이며, 목수(木手) 서울() 한천석(韓天石), 미장(泥匠) 서울() 권옥(權玉), 개와장(蓋匠)은 서울() 총융청 소속 이흥득(李興得)이다.

방화수류정의 원래의 편액은 전 참판 조윤형(松下翁 曺允亨)의 글씨이며, 현재 방화수류정에 걸려 있는 편액은 서예가 김기승(原谷 金基昇)1956(丙申)에 쓴 것이다. 방화수류정은 송대 정명도(程明道)의 시() "운담풍경오천(雲淡風經午天), 방화류과전천(訪花隨柳過前川)"에서 따왔다고 한다.

 

화성성역의궤(華城城役儀軌) 연설(筵說)의 기록에는 정조 19(1795) 214일에 화홍문을 경유하여 방화수류정에 임금과 신하가 거동한 기록이 있고, 정조 21(1797) 129일에는 방화수류정에서 임금과 신하가 활을 쏘았다는 기록이 있다.

 

수원부계록(1848.6.10)에 방화수류정, 팔달문, 장안문 등은 헌종 14(1848)에 중수되었으며, 1913년 방화수류정 보수, 1918년 방화수류정 개축, 1929~1934년 등 일제강점기에 여러 차례 수리되었다. 광복 후의 수리는 1968년 방화수류정 보수, 1973년 방화수류정 단청, 1975년 방화수류정 보수, 1988년 방화수류정 툇마루 밑 난간보수, 가칠단청, 1993년 방화수류정 기단 강회다짐, 마루 및 난간보수, 1998년 방화수류정 기와 고르기 및 단청, 1999년 방화수류정 단청 및 전벽돌 교체 등 방화수류정 보존을 위한 수리가 이루어져 왔다.

 

방화수류정에 관한 도면 자료는 화성성역의궤(華城城役儀軌)에 동북각루(방화수류정) 외도1(外圖一)과 외도2(外圖二), 동북각루내도(內圖)가 수록되어 있으며, 국립중앙박물관에는 1934년에 작성된 방화수류정의 평면도, 정면도, 단면도, 측면도 등이 소장되어 있다. 1980년에 발간된 수원성복원정화지에도 방화수류정의 평면도, 입면도 등이 수록되어 있으며, 2010년에 발간된 김주태 기증 전통 건축 설계도면집에는 방화수류정 측담 관련 도면이 수록되어 있다.

 

 

자료출처

 

1. 수원화성박물관. http://hsmuseum.suwon.go.kr/

2. 수원관광정보. http://www.suwoncitytour.co.kr/?p=14

3. 위키백과

4. 네이버 블로그. 방화수류정의 비밀.

https://m.blog.naver.com/PostList.nhn?blogId=moa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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