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창 선운사, 전북

 

사진=   최영규
사진= 최영규

선운산은 고창의 서부 해안가에 인접해 자리한 잔구성 산지로 서쪽으로는 서해에 면해 있고 북쪽으로는 곰소만을 지나 변산반도와 마주한다. 선운산도립공원은 천왕봉(336m)을 중심으로 경수산, 개이빨산, 청룡산, 비학산, 구황봉 등이 선운산의 동쪽으로 흐르는 선운천의 골짜기만 살짝 남겨둔 체 말발굽 모양으로 둘러싸고 있다.선운산의 주봉은 선운사의 서쪽 봉우리에 해당하는 도솔봉이며, 수리봉으로도 불린다. 제일 높은 봉우리는 경수산의 경수봉이다. 선운산에서 발원하는 물줄기는 동쪽으로 흘러 선운천을 따라 주진천에 합류하고, 서쪽으로 흐르는 물줄기는 궁산저수지와 해리천을 통해 서해로 흐른다. 선운천은 저평한 계곡을 흐르지만, 산지는 해발고도에 비해 경사가 심한 편이다. 선운천 주변으로는 선운산 야영장, 선운산 생태숲, 숙박업소, 식당 등이 들어서 있을 정도로 평지가 많다. 입구에서 약 4에 걸쳐 동백나무숲이 자리하고 있으며, 4월과 5월에는 동백꽃이 꽃 병풍을 이룰 정도로 아름답다.

선운산  산책로사진=   최영규
선운산 산책로. 사진= 최영규

2008년에 조성한 선운산 생태숲이다. 이곳은 자생 숲이라기보다 종전 습지에 조성한 생태 공원에 가깝다. 생태 연못과 습지 사이로 난 데크를 오가며 익숙한 습지 생물을 관찰할 수 있다. 이맘때 가장 시선을 끄는 건 보라색 붓꽃과 노랑꽃창포다. 노랑어리연꽃도 슬슬 꽃을 피울 기세다. 선운산생태숲은 꽃만 치자면 6월보다 7월이 다채롭다. 부처꽃, 마타리, 좀비비추 등이 피어나고 습지에는 어리연꽃과 수련 등이 얼굴을 내민다.

드라마 대장금 주인공의 엄마와의 슬픈 이별 장소였던 용문굴! 선운사 입구에서 1시간가량 걸어 올라가야만 볼 수 있는 곳이다. 등산객들도 많이 찾는 곳 중의 하나이다. 영화 곡성은 선운사에서 추격전과 천마봉에서의 대립관계를 잘 나타내는 장면을 찍었다.사진=   최영규
드라마 대장금 주인공의 엄마와의 슬픈 이별 장소였던 용문굴. 선운사 입구에서 1시간가량 걸어 올라가야만 볼 수 있는 곳이다. 등산객들도 많이 찾는 곳 중의 하나이다. 영화 곡성은 선운사에서 추격전과 천마봉에서의 대립관계를 잘 나타내는 장면을 찍었다. 사진= 최영규

선운사(禪雲寺)는 대한민국의 전라북도 고창군에 위치한 명승고찰로 백제 위덕왕 24(577) 검단선사와 신라의 국사인 의운국사가 창건했다고 전해진다. 조선 정조 18(1794) 임우상이 기술한 선운사 사적기에 따르면 신라의 진흥왕이 왕위를 버리고 이곳에 와서 선운사를 창건했다고 한다. 법명을 법운자로 한 진흥왕은 중애공주와 도솔왕비의 영생을 위해 진흥굴 윗산에 중애암을, 만월대 아래에 도솔암을 각각 세웠다고 한다. 고려 충숙왕 5(1318)에 효정선사가 중수하였고 공민왕 3(1354)에 재중수했으며 조선 성종 5(1474)에 행조선사가 중창했다. 정유재란 때 불탄 것을 광해군 6(1614)에 무장태수 송석조가 원준대사를 통해 1619년까지 5년간에 걸쳐 재건했다.

선운사는 한때 89암자 24189요를 갖춘 대찰로 억불숭유정책을 내세운 조선 시대에도 성종의 어실이 있을 정도로 번성했으며, 태종 때의 사찰폐쇄령에도 국태민안을 기원하기 위해 보존된 대찰이었다. 금동보살좌상, 지장보살좌상, 선운사 대웅전, 참당암 대웅전, 도솔암 마애불 등의 보물, 동백나무숲, 장사송, 송악 등의 천연기념물이 있으며, 석씨원류 경판·영산전목조삼존불상·6층석탑·범종·약사여래불상·만세루 백파율사비·참당암 동종·선운사 사적기 등 보물 5, 천연기념물 3, 기타 지방문화재 등 총 19점의 지정문화재가 있다. .

사진=   최영규
사진= 최영규

 

사진=   최영규
사진= 최영규

 

사진=   최영규
고창 선운사 만세루.                              사진= 최영규

 

고창 선운사 만세루.    사진=   최영규
고창 선운사 만세루. 사진= 최영규

고창 선운사 만세루는 대웅보전 앞에 세워진 누각으로 예불과 설법(설법) 및 법회를 하는 공간으로 쓰였다. 정면 9칸 측면 2칸 규모의 -자집 맞배지붕 건물로 우리나라 사찰 누각중에 규모가 가장 크다. 기록에 따르면 이 누각은 조선 광해군 12(1620) 2층 이상의 대양루(대양루)로 지어졌으나, 1751년 불타서 영조 28(1752)에 단층인 만세루를 다시 지었다고 한다. 이 때문에 현재의 누각은 일반적인 누각 모습이 아닌 평면이 넓고 높이가 낮은 독특한 형태를 띠고 있다. 단순한 구조에 웅장한 모습이지만, 뼈대를 이룬 나무들 가운데에는 다듬지 않거나 기둥 위아래에 다른 것을 이어 사용한 것도 있다. 특히 마룻보 가운데 하나는 두 갈래로 갈라진 나무를 그대로 사용했는데 그 끝에 용머리를 조각해서 자연미를 살렸다. 이처럼 만세루는 목재를 구하기어려웠던 당시 상황과 이를 극복한 장인들의 슬기로운 건축 솜씨가 돋보인다.

선운사 대웅전.   대웅전의 대대적인 수리로 외곽 및 내부의  모양을 볼 수 없다. 사진=   최영규
선운사 대웅전. 대웅전의 대대적인 수리로 외곽 및 내부를 볼 수 없다.                    사진= 최영규

 

대웅전은 절에서 특별히 숭배의 중심이 되는 주요 불상을 모시는 법당이다. 선운사는 구름 속에서 참선 수도하여 큰 뜻을 깨친다는 뜻인 참선와운(參禪臥雲)’에서 이름이 유래하였으며 대한 불교 조계종 24교구 본사로 189개의 승려 생활시설과 89개의 작은 절 그리고 144개의 굴()을 거느리던 호남 제1의 사찰이다.

선운사는 6세기 백제 위덕와때인 577년에 검단 선사가 창건했다고 전해진다. 현재의 대웅전은 정유재란때 거의 불에 탄 것을 광해군 때인 1610년에 다시 건축한 모습이며 그 뒤로도 수차례 수리했다.

선운사 대웅전은 비교적 높은 석축위에 세웠고 정면이 측면에 비해 2배 이상 크다. 기둥의 일부는 휘어진 나무를 그대로 사용하여 자연미가 느껴진다. 전체적으로 외관은 장중하며 안쪽은 단청 벽화가 매우 아름답고 세련된 모습이다. 천장의 수많은 용들이 구름속에 몸을 감추고서 선운사를 수호하고 있는데 그 모습이 섬세하고 화려하다.

일반적으로 대웅전은 석가모니불을 가운데로 하고 좌우에 부처를 모시는 보살을 두는데, 선운사 대웅전은 비로자나불을 가운데에 두고 좌우에 서방 극락정토의 주인인 아미타여래불과 중생의 병을 고쳐주는 약사여래불을 모시고 있다. 이러한 구성은 모든 부처의 육신이 아닌 진리의 모습인 비로지나불과 석가불을 일체로 보는 사상적 배경에서 출현한 것으로 보인다.

선운사 육층석탑.     사진=   최영규
선운사 육층석탑.          사진= 최영규

육층석탑은 화강암으로 된 고려시대의 석탑으로 원래는 9층 이었으나 현재는 6층만이 남아있다. 방형의 축대안에 지대석을 세우고 각층에 사각형의 중석을 올렸다. 6층 옥개석 위에 복발[(覆鉢, 탑의 노반(露盤) 위에 주발을 엎어 놓은 것처럼 만든 장식]이 있고 그 위로 팔각의 귀꽃으로 각축된 보개를 얹어 놓았다. 사적기에는 조선 성종때 행오선사가 홀로 우뚝 솟은 이 9층 석탑을 보고 사찰의 중창(重創, 낡은 건물을 헐거나 고쳐서 다시 지음)을 시작하는 계기가 되었다고 한다.

 

자료 출처

선운산도립공원(禪雲山道立公園)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http://encykorea.aks.ac.kr/Contents/Item/E0028852

대한민국 구석구석

https://korean.visitkorea.or.kr/detail/rem_detail.do?cotid=290418ad-6a22-45f5-8510-774148e195fe

고창

https://www.gochang.go.kr/tour/index.gochang?menuCd=DOM_000000406003000000

환경부

https://www.me.go.kr/smg/web/index.do?menuId=8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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