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것만이 좋은 것이라는 인식이 변하고 있다.  한국경제가 언제 끝날지도 모를 저성장 시대를 보내고 있다. 대한민국이 국제 경쟁력을 회복하고 침체된 내수 시장이 되살아난다고 해도 과거와 같은 고성장시대가 다시 오지는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 지배적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어떻게 해야 할까? 그 돌파구를 그동안 하찮게 여겼던 자투리와 헌 것, 새 것보다는 있는 것에서 찾아야 한다는 지적이다.  자원순환과 순환경제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는 가운데  새로운 가치로 등장한 자투리에 주목해 보자.<편집자주>

 

그동안 버려졌던 못난이 과일과 채소가 판로를 확보하면서 지구의 환경 보존은 물론 소비자들의 구매 부담 해소에도 큰 도움이 되고 있다. 사진=픽사베이

'겉모양이 울퉁불퉁한 토마토', '나란하지 않고 굽어져 있는 오이' '미끈하지 않고 여러 갈래로 갈라진 무' '군데군데 홈이 있어 껍질 다듬기가 쉽지 않은 감자' 

맛과 품질은 전혀 뒤떨어지지 않으면서 단지 모양 때문에 상품가치가 떨어진다는 이유로 한해 쓰레기 매립장으로 보내지는 못난이(Misfits) 농산물이 13억톤에 달한다고 한다. 전 세계 음식물 소비량 기준으로 봤을 때 전체의 1/3에 해당하는 어마어마한 양이다. 전세계 20억명이 먹을 수 있는 양으로, 약 4000억달러(452조)에 해당하는  음식물이 식탁에 오르지도 못하고 버려지고 있는 것이다.

미스피츠(Misfits)란 맛은 좋은데도 유통업체의 미적 기준에 부적격하다는 이유로 버려지는 농산물을 말한다. 

 

 

■  못난이 농산물 구독 서비스로 성장한 '미스피츠 마켓' 기업가치 1조 달러 유니콘 등극

미스피츠 마켓의 설립자 아브히 라메시(Abhi Ramesh)는 20대의 평범한 회사원이었다. 그는 2018년 여름 친구들과 함께 과수원에 사과를 따러 갔다가 유통 규격에 맞지 않는다는 이유로 멀쩡한 사과가 버려지는 것을 보고 픽업트럭을 몰고 농부들로부터 싼 값에 농산물을 받아와 우버를 통해 배달을 하는 식으로 사업을 시작했다.

농부들도 처치 곤란한 상품을 돈을 주고 받아가니 반가울 수 밖에 없었다. 농산물은 버려지는 과정에서 갖은 환경문제를 야기한다. 썩어가는 과정에서 가스와 폐수가 발생하고, 부패하면서 나오는 메탄가스는 지구 온난화의 주범이다. 특히 음식물 쓰레기에서 발생하는 온실가스는 전세계 온실가스 배출량의 10%를 차지한다. 

미스피츠 마켓은 외관에 흠집이 있거나 모양과 크기가 일정하지 않은 못난이 농산물을 취급한다. 미스피츠마켓에서 취급하는 농산물은 최고 40% 저렴하다. 

못난이 농산물은 구독 서비스 형태로 판매한다. 초기에는 소비자들이 박스 크기를 정해주면 무작위로 상품을 보내줬지만 지금은 원하는 농산물과 박스 크기, 배달 주기, 배달 날짜 등을 소비자가 선택하면 원하는 날짜에 원하는 양을 보내준다. 맛이 좋은데도 모양 때문에 버려지는 유기농 농산물을 합리적인 가격으로 배달해주는 것이 미스피츠 마켓의 특징이다. 

미스피츠 마켓은 소비자들의 호응에 힘입어 무서운 속도로 급성장을 거듭했고, 설립 4년만인 2021년 기업가치가 1조달러를 자랑하는 유니콘 기업으로 등극했다.  

미스피츠 마켓은 사회 빈곤층이 밀집된 대도시 중심부나 고령화 지역,시골 등에 질 낮은 인스턴트 식품 대신 신선한 과일과 채소를 값싸게 제공하는 것을 기업목표로 하고 있다.  

멀쩡하지만 버려지는 음식을 통해 사회적 가치을 창출하고 있는 미스피츠 마켓, 단순한 식품 공급을 넘어 소비자들의 라이프 스타일과 식(食) 문화까지 변화시키고 있다.  

■ 못생겨도 맛 좋고 가격도 싸요…롯데마트, 못난이 과일 최대 30% 할인

홈플러스는 지난해 7월 사과, 토마토, 밀감 등 ‘맛난이 과일’과 무, 양파, 감자 등 ‘맛난이 채소’를 판매했다. 맛난이라는 이름은 ‘못나도 맛은 좋다’는 뜻이다. 홈플러스 관계자는 “예기치 못한 이상기온, 폭우, 태풍으로 수확량이 줄어들어 어려움을 겪는 농가의 B급 못난이 과일과 채소를 맛난이 품목으로 취급했었다”며 “맛난이 품목은 일반 농산물 대비 약 20~30% 저렴하다”고 말했다.

모델들이 서울 등촌동 홈플러스 강서점에서 ‘맛난이 과일’을 선보이고 있다. 사진=홈플러스

롯데마트는 맛과 영양은 차이가 없지만 크기가 작거나 외관에 흠이 있는 사과와 참외, 자두 등 ‘못난이’ 상생 과일을 최대 30% 할인해 팔고 있다. 

롯데마트의 B+급 과일은 ‘상생 과일’로 이름이 붙여졌다. 일반 상품과 비교해 맛과 영양에는 큰 차이가 없지만 크기가 조금 작거나 흠이 있는 상품이다. 롯데마트의 로컬 상품기획자(MD)들은 전국 산지를 돌아다니며 판로를 찾지 못한 B+급 과일을 매입해 소비자에게 저렴한 가격에 선보이고 있다.

롯데마트에 따르면  참외, 자두, 사과 등 10여 개 상생 과일은 지난해 판매량이 전년 대비 200% 이상 증가했다.

롯데마트 서울역점. 사진=롯데마트
롯데마트 서울역점. 사진=롯데마트

'B급'으로 평가 절하된 못난이 상품에 대한 인식도 달라지고 있다. 한국소비자원이 소비자 2000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농산물 구매 실태와 인식에 대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61%는 ‘못난이 농산물을 구매한 경험이 있다’고 답했다. 구매 이유로는 ‘가격이 일반 농산물보다 저렴(46%)’, ‘품질에 큰 차이가 없음(28%)’이 꼽혔다.  구매 경험자의 96%가 재구매 의사를 보였다.

대형마트 관계자는 “장바구니 물가 부담이 크기 때문에 심리적으로 저렴한 가격대가 구매력이 큰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하지만 ‘못난이 농산물’이라도 맛과 품질이 크게 떨어지지 않기 때문에 호기심 차원의 일회성 구매가 아닌 반복적인 구매로 이어지고 있다고도 볼 수 있다”고 분석했다.

■ 못난이 농산물' 팔아주자…충북도 영농법인 설립 추진

'못난이 김치'를 선보인 충북도가 김치 외에 껍질 등에 상처가 나 팔지 못하는 사과·감자·고구마 등 '못난이' 농산물을 도맡아 시판할 법인 설립을 추진한다.

도는 영농법인을 설립해 운영하다가 중장기적으로 타 시·도가 운영하는 종합무역상사처럼 확대해 나갈 계획이다.

지난해 12월 1일 출하하기 시작한 충북 ‘못난이 김치’는 “수확하지 못한 채 밭에 남겨둔 배추로 저렴하게 김치를 만들어 중국산 김치를 몰아내자”는 김영환 충북지사의 제안으로 시작됐다.

자료=충청북도

김영환 충북지사는 "4년전부터 괴산에서 고구마, 옥수수, 콩 등 농사를 짓고 있다. 아들하고 며느리가 귀농해서 온 가족이 함께 짓는다"라며 "그런데 배추 농사를 하는 농민들을 보니 좋은 배추만 팔고 절반 이상을 버리더라. 이걸 버리지 않는 방법이 없을까 생각하다 '못난이 김치'를 고안하게 됐다"고 말했다.

못난이 김치를 생산하는 업체들은 지난달 대한적십자사와 도청·산하기관 구내식당 등에 20t, 한국외식업중앙회에 10톤을 판매했다.

올해에는 슈퍼마켓 GS더프레시가 전국 매장에서 100톤을 판매 중이고, 일본 에이산 예스 마트가 10톤을 팔고 있다.
오는 3월에는 ‘못난이 사과’도 판매된다. 흠집이 많지만 주스 등 가공용으로 팔기에는 아까운 사과가 대상이다. 충북도는 이달 30일 충주원예농협과 판매 방법, 가격 등을 논의할 계획이다.

김치와 사과 외에 수박, 포도, 고구마 등 다양한 과일과 채소도 이런 방식으로 팔 수 있다.

도는 향후 활용할 ‘어쩌다 못난이’, ‘착한 못난이’, ‘건강한 못난이’ 상표 등록도 출원했다.

도 관계자는 “못난이 농산물 물량 확보, 가격 설정, 이윤 확보 등의 대책만 마련된다면 영농법인 설립은 다음 달에도 가능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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