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투리 여행 이야기 – 쵸이 발자취(52)] 성북동 길상사
[자투리 여행 이야기 – 쵸이 발자취(52)] 성북동 길상사
  • [자투리경제=최영규 SNS에디터]
  • 승인 2021.02.06 07:2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무소유 삶의 흔적, 법정 스님

제52회 성북동 길상사

 

길상사 입구. Photo by 최영규
길상사 입구. Photo by 최영규

길상사(吉祥寺)의 사찰 이름은 ‘길하고 상서로운 절’이란 의미로, 묘길상(妙吉祥) 곧 문수보살의 별칭에서 인용된 불교용어이며, 승보사찰(僧寶寺刹) 송광사(松廣寺)의 옛 이름이기도 하다. 송광사는 신라 말 혜린(慧璘)선사에 의해 창건되었는데, 창건 당시의 이름이 송광산 길상사였으며 100여 칸쯤 되는 절로 30~40명의 스님들이 살 수 있는 그리 크지 않은 규모의 절이었다고 한다.

송광사 길상사가 새로운 규모로 중창되고 한국 불교의 중심으로 각광을 받게 된 것은 고려 중기의 고승 보조국사 지눌스님이 9년 동안 중창불사를 통해 절의 규모를 확장하고, 정혜결사를 통하여 한국 불교의 새로운 전통을 확립한 근본도량으로 참선을 중요시하는 선종사찰로 탈바꿈하게 되었다. 송광사는 현재 오늘날까지도 승보사찰로 불리는 한국의 대표적인 선종사찰로 여겨지고 있다.

법정 스님은 1993년 10월, 뜻있는 작가와 신도들과 함께 프랑스에 ‘송광사 파리 분원 길상사’를 개원하였다. 그리고 1995년 김영한 여사로부터 대원각을 기증받아 송광사 분원 대법사로 등록하였다가, 길상(吉祥) 이라는 말을 좋아하던 법정 스님은 1997년 1월 29일 창건 준비인 모임에서 처음으로 ‘길상사’란 절 이름을 공식화하였다.

본래는 '대원각'이라는 이름의 고급 요정이었으나 요정의 주인이었던 고 김영한(1916~1999, 법명 길상화)이 법정 스님에게 자신이 소유한 요정 부지를 시주하여 사찰로 탈바꿈하게 되었다. 처음 1985년에 김영한으로부터 자신의 재산을 희사해 절을 짓게 해달라는 요청을 받고 법정은 이를 간곡히 사양하였으나, 김영한은 10년 가까이 법정을 찾아와 끈질기게 부탁했고 이에 법정 또한 이를 받아들여, 1995년 6월 13일 대한불교조계종 송광사 말사인 '대법사'로 등록하여 처음 사찰이 되었고, 초대 주지로 현문이 취임하였다. 1997년에 맑고 향기롭게 근본도량 길상사로 이름을 바꾸어 재등록되었고 같은 해 2월 14일에 초대 주지로 청학이 취임하였다.

사진2와 사진설명 사진설명; 경내의 불상. 지극한 도는 어려움이 없나니 오직 분별하는 것을 꺼릴 뿐이라 사랑하고 미워하지 않으면 툭트여 명백하리라. Photo by 최영규
경내의 불상. 지극한 도는 어려움이 없나니 오직 분별하는 것을 꺼릴 뿐이라 사랑하고 미워하지 않으면 툭트여 명백하리라.  Photo by 최영규

사찰의 창건주였던 법정은 불문에 귀의한 김영한에게 길상화라는 법명을 주었고, 김영한 사후에도 길상사에서 정기법회를 열었으며, 2010년 3월 11일 길상사에서 78세(법랍 54세) 로 입적하였다. 또한 길상사의 개원법회가 열리던 1997년 12월 14일에 고 김수환 스테파노 추기경이 법회에 참석해 법정과 함께 나란히 축사를 했고 법정 또한 이에 답하여 1998년 2월 24일에 명동성당을 찾아 법문을 설법하였다. 길상사 경내에는 공덕주 김영한의 공덕비와 함께, 법정의 영정과 그 생전 유품들을 전시한 기념관도 함께 마련되어 있다.

 

길상사 설법전. 깨달음을 얻은 부처님의 가르침을 전하는 공간에서 아침예불을 통해 부처님의 설법을 암송한다. 생, 노, 병, 사의 근본적인 고통의 업을 인간으로 태어난 이생에 끊어내야 함을 쉼없는 정진을 통한 해탈을 위해 스님들과 재가불자들이 수행을 하는 공간이다.  Photo by 최영규
길상사 설법전. 깨달음을 얻은 부처님의 가르침을 전하는 공간에서 아침예불을 통해 부처님의 설법을 암송한다. 생, 노, 병, 사의 근본적인 고통의 업을 인간으로 태어난 이생에 끊어내야 함을 쉼없는 정진을 통한 해탈을 위해 스님들과 재가불자들이 수행을 하는 공간이다. Photo by 최영규

 

경내에는 극락전, 지장전, 설법전 등의 전각이 있으며 행지실, 청향당, 길상헌 등의 요사가 존재한다. 2011년 이후 덕운이 주지로 취임하였으며, 불교 자선재단 맑고 향기롭게의 근본도량으로써 여러 가지 사회사업을 펼치고 있다.

법정 스님의 영정과 친필 원고, 유언장 등이 전시된 진영각.  Photo by 최영규
법정 스님의 영정과 친필 원고, 유언장 등이 전시된 진영각. Photo by 최영규

법정 스님의 흔적은 길상사 가장 높은 곳에 자리 잡은 진영각에 있다. 전각에는 스님의 영정과 친필 원고, 유언장 등이 전시된다. 법정 스님은 “의식을 행하지 말고, 관과 수의를 준비하지 말며, 승복을 입은 채로 다비하라”고 유언했다. 유골은 진영각 오른편 담장 아래 모셨다. 진영각 옆에는 생전에 스님이 줄곧 앉은 나무 의자가 흔적을 대신한다.

 

법정스님 유골을 모신곳. 진영각 오른쪽 담장 아래에 위치하고 있다.  Photo by 최영규
법정스님 유골을 모신곳. 진영각 오른쪽 담장 아래에 위치하고 있다. Photo by 최영규
진영각 좌측에 생전에 스님이 줄곧 앉은 나무 의자가 법정스님의 흔적을 대신한다.  Photo by 최영규
진영각 좌측에 생전에 스님이 줄곧 앉은 나무 의자가 법정스님의 흔적을 대신한다. Photo by 최영규

 

관음보살상. 경내에 있는 관음보살 석상은 천주교 신자이자 가톨릭 예술가인 최종태가 건립한 것으로, 같은 조각가가 혜화동 성당에 건립한 성모 마리아 석상과 닮아 있다.  Photo by 최영규
관음보살상. 경내에 있는 관음보살 석상은 천주교 신자이자 가톨릭 예술가인 최종태가 건립한 것으로, 같은 조각가가 혜화동 성당에 건립한 성모 마리아 석상과 닮아 있다. Photo by 최영규

 

길상사 일주문 안으로 들어가면 키가 큰 관음보살상이 가장 먼저 눈에 띈다. 천주교 신자인 조각가 최종태가 종교 간 화해와 화합을 염원하며 기증한 작품이다. 창건 법회 때 김수환 추기경이 축사를 했고, 석가탄신일과 성탄절에는 서로 축하 현수막을 내건다. 언제 봐도 흐뭇하고 아름다운 모습이다.

 

자료 출처

1. 한국관광공사

https://korean.visitkorea.or.kr/detail/rem_detail.do?cotid=49dbf1fe-788b-4ed6-8e04-dcf09d35da5d

2. Wikipedia

https://ko.wikipedia.org/wiki/%EA%B8%B8%EC%83%81%EC%82%AC_(%EC%84%9C%EC%9A%B8)

3. Visit Seoul

https://korean.visitseoul.net/attractions/%EA%B8%B8%EC%83%81%EC%82%AC_/3256

4. 대한민국 구석구석

https://korean.visitkorea.or.kr/detail/rem_detail.do?cotid=49dbf1fe-788b-4ed6-8e04-dcf09d35da5d

 

 

 


관련기사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