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투리 여행 이야기 – 쵸이 발자취(64)] 속리산 법주사와 세조길
[자투리 여행 이야기 – 쵸이 발자취(64)] 속리산 법주사와 세조길
  • [자투리경제=최영규 SNS에디터]
  • 승인 2021.07.18 20: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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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더운 여름철, 더위를 피하는 또 하나의 지혜

제64회. 속리산 법주사와 세조길

 

 

세조길 입구. 사진; 네이버 블로그
세조길 입구. 사진=네이버 블로그

 

조선 7대 임금 세조는 형 문종이 죽고 조카인 단종이 보위에 오르자 계유정난을 일으켜 섭정을 맡던 김종서와 황보인을 비롯해 자신에게 협력하지 않는 인물들을, 한명회로 하여금 살생부를 만들어 죽이고 대권을 잡았다. 동복동생 안평대군과 금성대군은 유배를 보내 사사했고 단종으로부터 선위를 받아 즉위했다. 단종 복위운동이 일어나 왕위가 위태로웠는데 조카인 단종을 강원도 영월로 유배 보냈다가 살해했다. 13년 동안 재위하다가 병으로 차남 예종에게 선위하고 상왕으로 물러난 지 하루만에 사망했다. 물론 신하들의 힘에 좌지우지되는 왕권을 강화시키려고 한 것이지만, 마음은 편치 않았을 것이다. 세조는 그런 불편한 마음으로 52세로 숨을 거두기까지 불면증과 우울증에 시달렸다고 한다. 세조는 적당히 스트레스를 풀어줘야 건강이 유지됨을 숙지하고 있었고, 누구보다도 먹고 마시는 문제를 진지하게 여겨 즐겁게 먹으면서 고르게 먹는 일이 건강을 유지하는 지름길임을 강조했다.

이런 지병을 갖고 있던 세조에게 속리산 법주사에 요양차 방문했을 때 법주사 입구에서 복천암까지 왕복을 했던 순행길이 있으며 이 길을 자연과 사람이 공존하는 아름다운 길 ‘세조길’ 이라 하였다. 세조길은 안전하고 쾌적한 탐방을 위해 조성됐으며 법주사에서 편도 3.2 km 정도의 거리로 2016년 9월에 개통됐다.

저수지와 계곡을 따라 완만하게 이어져 있어 남녀노소 누구나 쉽게 걸을 수 있고 유모차나 휠체어 등 교통약자를 배려한 구간도 있다. 세조길은 소중한 자연을 보존하며 자연과 사람을 이어주는 생명의 길로 속리산의 대표적인 명소이다.

 

속리산 정이품송. 천연기념물 103호로 수령은 약 700년 이상, 높이 15m의 소나무이다. 조선 제7대 세조 임금이 속리산에 행차할 때 세조 임금의 가마가 잘 지나갈 수 있도록 스스로 가지를 들어 올려 세조임금으로부터 정이품(현재 장관급)의 벼슬을 받았고 이후 “정이품송” 으로 불리워 졌다. 사진; 최영규
속리산 정이품송. 천연기념물 103호로 수령은 약 700년 이상, 높이 15m의 소나무이다. 조선 제7대 세조 임금이 속리산에 행차할 때 세조 임금의 가마가 잘 지나갈 수 있도록 스스로 가지를 들어 올려 세조임금으로부터 정이품(현재 장관급)의 벼슬을 받았고 이후 '정이품송' 으로 불리워졌다.    사진=최영규

 

목욕소(沐浴沼). 조선 제7대 세조 임금이 속리산에 행차할 때 복천암으로 가던중 들려서 목욕을 한 장소이다. 목욕을 하던 세조에게 약사여래의 명을 받은 월광태자가 나타나 ‘피부병이 곧 완쾌될 것이다’라고 말하고 사라진 후 세조의 피부병이 나았다 하여 ‘목욕소’라고 불리웠다. 사진; 네이버 블로그에서
목욕소(沐浴沼). 조선 제7대 세조 임금이 속리산에 행차할 때 복천암으로 가던중 들려서 목욕을 한 장소이다. 목욕을 하던 세조에게 약사여래의 명을 받은 월광태자가 나타나 ‘피부병이 곧 완쾌될 것이다’라고 말하고 사라진 후 세조의 피부병이 나았다 하여 ‘목욕소’라고 불리웠다. 사진= 네이버 블로그

 

복천암. 신라 성덕왕때 창건되었으며 조선 제7대 세조 임금이 스승인 신미대사를 만나기 위한 사은순행과 요양시에 방문하여 널리 알려졌다. 세조의 길 끝에 자리하고 있다.   사진; 네이버 블로그에서
복천암. 신라 성덕왕때 창건됐으며 조선 제7대 세조 임금이 스승인 신미대사를 만나기 위한 사은순행과 요양시에 방문하면서 널리 알려졌다. 세조의 길 끝에 자리하고 있다. 사진=네이버 블로그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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