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기 (義妓) 논개가 왜장을 끌어안고 떨어져 순절한 의암(義岩), 진주

 

의암(義岩).   사진=   최영규
의암(義岩). 사진= 최영규

진주성 촉석루 앞 남강가의 의암(義岩). 1593(선조 26) 임진왜란 2차 진주성 전투때 성이 함락되고 7만여 명의 민··군이 순절한 뒤 의기 (義妓)논개가 왜장을 끌어안고 떨어져 함께 죽은 바위다

조선조 선조 26(1593) 629 임진왜란 제2차 진주성전투에서 진주성이 함락되고, 7만 민관군이 순절하자 논개는 나라의 원수를 갚기 위해 왜장을 유인하여 이 바위에서 순국하였다. 이에 논개의 순국정신을 현창하기 위해 영남사람들이 의암이라고 명명하였다. 인조 7(1629) 진주의 선비 정대륭(鄭大隆15991661)은 바위의 서쪽 벽면에 의암이라는 글자를 전각하였고, 남쪽에는 한몽삼(韓夢參15981662)이 쓴 것으로 전하는 의암이라는 글이 새겨져 있다. 의암의 바닥 넓이는 3.65m×3.3m이다. 옆의 암벽에는 '한 줄기 긴 강이 띠를 두르고, 의열은 천년의 세월을 흐르리라(일대장강(一帶長江) 천추의열(千秋義烈)'는 글이 새겨져 있다.

진주 남강가의 의암(義岩).   사진=   최영규
진주 남강가의 의암(義岩). 사진= 최영규

윗부분이 가로 3.6m, 세로 3m크기인 이 바위는 나라에 큰일이 있을때 마다 촉석루쪽 암반과 붙는다는 이야기가 전해 오며 신비감이 돌고 있다. 6.25전쟁때 촉석루쪽과 붙었다고 전해 온다. 그동안 의암의 이동설에 대해 소문만 무성했을뿐 아무도 과학적 접근을 시도해 보지 않았다. 지질학자인 서승조(65·진주교대 과학교육과)교수가 최근 펴낸 진주의 지질과 화석’(지식산업사, 134)이라는 책에서 쉽게 설명하고 있다. 그는 제1장 진주의 지질 경관-‘의암은 정말 움직이는가라는 항목에서 촉석루 암반층 지층면 방향은 동쪽이 기울어져 있는데 의암은 수평이라고 밝혔다. 바위의 밑부분이 붙어 있는 것이 아니라 서로 다른 바위라는 설명이다. 의암은 모래층위에 얹혀 있어 강물의 흐름에 따라 조금씩 움직일 수 있다고 덧붙였다.

 

자료 출처

국가문화유산포탈

http://www.heritage.go.kr/heri/cul/culSelectDetail.do;jsessionid=J12E91yPnuP1Jv6aDz8vnGOgxiiOo1WzYkIruiH00qFkumpf7lEohTly7VrhLpXJ.cpawas2_servlet_engine1?pageNo=1_1_2_0&ccbaCpno=2333802350000

중앙일보

https://www.joongang.co.kr/article/3160191#ho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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