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말 가끔이지만
이토록 솔직하고 놀랍도록 단순한 한마디에 세상이 바뀐다
나의 새장 속 세상이”

 

사진 = 출판사 달
사진 = 출판사 달

 

 

무수한 타인으로 살아가는 배우가 아닌
나 한 사람으로 살아가는 ‘사람 강혜정’의 이야기

자신만의 고유한 분위기를 강렬하게 내보이던 배우 강혜정의 첫 에세이가 출간됐다. 작가로서 처음 발을 내디딘 그는 가장 내밀한 그날의 기억들을 하나씩 꺼내 보이기로 했다.

고요한 반항아이자 음악에 흠뻑 빠질 줄 알던 어린 날, 정체 모를 불안으로부터 정신없이 발버둥 치던 젊은 날, 마주한 어둠에서도 끝내 스며드는 누군가의 다정함에 눈물 흘리던 어느 날까지. ‘배우 강혜정’이 아니라 ‘사람 강혜정’이 겪은 수많은 날들은 우리들의 어느 날과도 자주 겹쳐 보인다.

누군가는 그날들을 청춘이라고도 부르겠다. 하지만 ‘푸른 봄’이라 부르기에 그 계절은 떠올리는 것만으로 건조하고 온몸이 타오를 듯 뜨거운 ‘난춘’에 가까웠다. 다만 모든 것이 그러하듯, 홧홧하던 시간도 점차 노을처럼 저물기 마련이다. 자기만의 ‘새장’에서 변해가는 계절을 보내는 사이 마음에는 길쭉한 그림자가 만들어졌지만, 이내 찾아온 어둠은 그 흔적도 지워내며 저 멀리 새벽빛과 숨이 트이는 단비도 함께 가져왔다.

저자는 ‘새장 속 세상’에 머무는 시간 동안 자신이 보고, 느끼고, 생각한 모든 것을 솔직한 문체로 적어내리기 시작했다. 다름 아닌 휴대폰에. 누구에게 보여주기 위해 쓴 것이 아니었기에, 머릿속에 떠오른 문장들을 보다 솔직하게 담을 수 있었다. 집필은 그의 새장을 밝히거나 넓히는 과정이었고, 한 뼘짜리 작은 휴대폰은 어느새 그에게 안온함을 주는 방파제가 되었다. 그리고 4년 뒤, 『반은 미치고 반은 행복했으면』이라는 제목을 달아 한 권의 책으로 만들었다.

 

우리 삶에서 파도처럼 오가는 외로움과
비처럼 흐르는 다정함에 대해


『반은 미치고 반은 행복했으면』을 읽는 과정은 마치 파도를 타는 것과 같다. 어느 글은 시나 노랫말 같고 어느 글은 소설처럼 느껴지는데, 이토록 변화무쌍하게 요동치는 글은 읽는 내내 하나의 큰 흐름으로 독자에게 밀려들기에 독자들은 그 파동을 온몸으로 느낄 수 있다. 그것은 어쩌면 날것에 가까운 체험이라, 미디어로 알고 있던 ‘배우 강혜정’을 떠올리며 마주하면 꽤나 낯설게 느껴질지도 모른다. 그러나 날이 서슬 퍼런 사람들에게 상처받더라도 기꺼이 손을 내미는 저자의 다정함은 위태롭게 사랑스럽고, 끝내 사람에게 다가가고픈 그의 외로움은 어딘지 모르게 익숙할 것이다. ‘저는 미칠 것 같은 이 세상을 이렇게 살아내고 있어요. 당신은 어떤가요?’라고 묻는 『반은 미치고 반은 행복했으면』에서 우리는 수많은 나와 만나는 경험을 하게 된다.

안정감을 찾아 무더운 바깥을 뛰어다니던 시간은 누구에게나 있다. 아무런 꾸밈없이 표현된 저자의 글은 독자들의 마음속을 마구 휘저을 것이고, 뙤약볕에서 제 자리를 찾고자 흘려온 땀을 기억한다면 더욱 가슴에 와 닿을 문장들로 가득할 것이다.

저자 강혜정은 책 속의 '스타트라인'이라는 내용을 설명하며 "작품 역시 늘 새로운 시작이다. 앞으로 만나고 싶은 작품에는 또다시 새로운 기분으로 과감히 뛰어들고 싶다"고 밝혔다.

 

사진 = 출판사 달
사진 = 출판사 달

 

 

<책 속으로>

거친 파도를 뚫고 어부는 그물을 친다. 그물이 닿는 곳에 부유하던 물고기들은 건져진 순간 물 밖에서도 살아 숨 쉴 것처럼 펄떡거리며 존재감을 과시한다. 우리가 돌보는 스트레스는 딱 눈에 보이는 거기까지인 것 같다. 바위틈에 숨어 있는 것들을 잊고, 어둠 속 심해어가 몸집이 커지는 동안에도 모르고 살다, 그것들이 조금씩 움직일 때 몸에 갑작스러운 큰 파장이 인다. 더 세심하고 깊이 있게 나를 돌아보는 순간에 비로소 건강한 삶을 찾게 되지 않을까 싶다.
---「화병」중에서


물론 일련의 사건으로 이 구역의 사운드트랙은 계속되지 못했다. 주택가에 울려퍼지던 노랫소리는 누군가에게 그저 소음이었겠지만 분명 다른 누군가에겐 예상치 못한 곳에서 마주친 첫사랑과도 같은 시간이었을 것이다. 나의 일탈은 ‘이탈’을 지향했다. 지극히 혼자만의 것도 아니었고 바르지도 않았고 예의를 벗어나기도 했지만 적잖이 항생제 같은 녀석이었다. 습관처럼 기록하고, 공유가 낙이며, 저장 용량도 넘쳐나는 이 현실에선 예전만큼 쉬운 일이 아니지만 나는 이런 괴짜스러운 일탈이 여전히 고프다.
---「일탈 이탈」중에서


가능성 ‘1’을 포함한 이야기는 가능성 ‘10’을 만들고 누군가의 입방아에 의해 고개가 끄떡여지는 순간 ‘100’이라는 확신으로 점화된다. … 재투성이가 된 우리는 다시 일어서기 위해 두려움을 털어내는 고통을 감내해야 한다. 그리고 다시는 쉽게 무너지지 않을 자리에 오를 각오로 매 순간 최선을 다해 살아가야 한다. 그 최선이 다음 도약이 되는 순간 우리는 더 강하게 일어날 것이다. 그리고 누군가의 라이프 리스트에 꼭 끼어 언제까지고 사랑받게 될 것이다. 그 사람, 퍼프 대디처럼 말이다.
---「퍼프 대디에 대한 음모론」중에서


내 마음이 그녀를 다독이고 있었고 그 바람이 통했는지 그녀는 꾹꾹 눌러 담은 감정 한 톨 한 톨을 참 아련하게 들려주는 그런 무대를 선물했다. 내게 그 5분은 그리도 강했고 “잊지 못해. 너를. 있잖아”로 시작하던 그날의 멜로디는 지금도 잊히지 않는다.
---「‘제발’」중에서


동그란 바늘구멍으로 보풀이 이는 실이 꿰어지고, 그것으로 꿰맨 자국을 보고 있자니 이건 개성이 아닌 그저 결핍이란 사실을 깨달았다. 홍콩 영화를 즐겨보고 무림의 아이들처럼 강해지고 싶어하는 작은 동네의 시라소니. 여자아이들 특유의 소녀다움을 손사래 치며 거부하고 톰보이라는 명찰을 학생회장 배지라도 되는 것처럼 든든하게 여기던 아주 작은 소녀. 아니야, 아니다. 사실은 순정만화를 즐겨보고 디즈니 프린세스가 되고 싶었던 보통의 소녀. 취향을 감추고 살던 귀여운 거짓말쟁이. 문득 나 자신에게 애처로운 마음이 들었다.
---「센 놈」중에서


그나저나 일단은 머리를 좀 자르고 싶다. 어디로 갈까나. 마땅한 목적지도 없고 이렇다 할 정보도 없다. 이것마저도 괜찮다고 생각한다. 그래, 괜찮았다. 아무것도 정해진 것이 없다 하더라도, 아무것도 정해질 것 또한 없다 하더라도 다 괜찮다. 매번 나를 몰아세우고 있는 나로부터 잠시나마 벗어나는 것이 필요하다. 괜찮다, 그래도 괜찮다.
---「그래도 괜찮다」중에서


여전히 칭찬은 나를 어렵게 한다. 그렇지만 처절하게 고독했던 순간을 양분삼아 괴로워하고 기뻐하며 세상에 내어놓은 것들이 여전히 관심 있게 보이고 좋게 평가받는 것에는 감사함과 감격이 차오른다. 시간을 거슬러왔어도 제대로 봐주고 있다는 생각에 명치 위쪽이 뜨끈하다. 등짝이 따가워도 말이 곱지 않아도 그것이 최고의 칭찬일 수 있는 매우 특별한 기회를 움켜쥔 것, 그때 뽑은 강아지풀이 억세 아직 손에서 놓지 못했다는 것에 복잡한 미묘함을 느끼지만… 나로 산다는 것 그리고 그들 혹은 그것으로 산다는 것, 이 모든 게 사실은 나에게 화해를 청하고 있는 건 아닌지….
---「강아지풀」중에서

 


<저자 : 강혜정>

아주 일찍 연기를 시작했으나 사실 지금도 배우라고 스스로를 규정짓는 일이 어색하다. 다만 데뷔작인 드라마 <은실이>에서 보여준 악역 연기로 TV 바깥에서 동네 아주머니에게 ‘너 너무 못됐더라’라며 등짝을 맞았던 그 짜릿한 순간을 선명히 기억한다.

영화 <올드보이>, <웰컴 투 동막골>, <연애의 목적>에서처럼 고유한 결로 연기하고자 했던 ‘배우 강혜정’에서 ‘사람 강혜정’으로서 첫 에세이를 집필하게 되었다. 정자세로 앉아 노트북이나 원고지에 글을 쓴 것이 아니라, 반쯤 누워 한 뼘 휴대폰에 떠오르는 것을 톡톡 두드려 넣는 시간 동안, 쓰는 일이 나다워지는 일이며 나를 구원하는 방식이구나 싶었다. 무수한 타인으로 살아가는 배우로서가 아닌 그저 나 한 사람으로서 살아오며 느꼈던 기분좋은 어색함과 두근거림, 그리고 잔인한 물결들을 지금 이 책에 고스란히 잇대고 싶다는 열망만은 분명하다.

딸 하루가 성장하면서 글을 쓸 수 있는 시간적 여유가 생겼고 그렇게 글을 끄적이게 되었다고 한다. 글이 하나둘 쌓이다 보니 단 한 명의 독자라도 있었으면 하는 바람이 생기게 됐다. 첫 독자는 남편이자 래퍼이자 글쓰기 선배인 타블로였다. "잘 쓴다", "좋다", “계속 써보라”는 응원 덕에 글이 계속 쌓였고, 남편인 타블로가 출판사 대표에게 원고를 보내 책이 출간되었다고 한다. 강혜정은 “이 책을 통해 독자들이 ‘나만 이런 엉뚱한 생각을 갖고 사는 것이 아님’을 이해받고 덜 외로워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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