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가계부채가 재차 증가세를 보이자 금융당국은 주담대 관리 강화 계획을 밝혔다. 그 중에서도 50년 만기 주담대를 주요 대상으로 지목했다. 만기 기간이 너무 길어 오히려 이자 부담이 더 커진다는 이유에서다. 사진 = 각 사

NH농협은행이 50년 만기 주택담보대출 상품 판매를 갑자기 중단하기로 했다. 

지난달 5일 출시한 만기 50년의 주택담보대출 상품인 '채움고정금리모기지론(50년 혼합형)'을 취급한 지 두 달도 안 돼 더이상 판매를 하지 않기로 한 것이다.

50년 만기 주택담보대출은 원리금을 50년에 걸쳐 상환할 수 있는 대출 상품으로, 지난 1월 수협은행이 선보인 뒤 5대 은행도 지난달 이후 줄줄이 관련 상품을 출시했다. 농협은행이 지난달 5일, 하나은행이 7일, 국민은행이 14일, 신한은행이 26일부터 판매를 시작했다. 우리은행과 기업은행은 주담대 만기를 최장 40년에서 50년으로 확대했다. 지방은행인 대구은행도 50년 만기 주담대를 취급하고 있다.

지난 10일 기준으로 KB국민·신한·하나·NH농협은행의 50년 만기 주택담보대출 취급액은 1조2379억원에 이른다. 출시 이후 한 달여 만에 대출 잔액이 1조원을 훌쩍 넘었다.

NH농협은행이 고객들 반응이 좋았음에도 돌연 판매를 중단한 이유는 뭘까.  50년 만기 주담대가 가계대출 급증을 부채질하고 있다는 금융당국의 압박 때문이다.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은 지난 16일 "은행들이 주담대 산정에서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관리가 적정했는지 실태점검을 할 예정"이라고 말한데 이어 김주현 금융위원장도 같은 날 " 50년 만기 주담대에 대해 연령제한 방안 등을 검토하겠다"고 언급한 바 있다.

이어 다음날인 17일 금감원은 은행장 간담회에서 "50년 만기 주담대에 대해 (DSR) 산정이 적정했는지를 살펴보고, 제도 개선이 필요하면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최근들어 가계부채가 급격하고 늘고 있는 것에 대해 금융권 부실 우려는 물론 금융시장 안정까지 해치는 요인으로 지목되고 있다. 

또  향후 통화정책 운용에 가계부채가 주요 변수로 작용할 가능성이 커진 상황이다. 지난 7월 금통위 의사록에서 한 금통위원은 "미 연준의 추가 금리 인상 가능성, 근원물가 둔화 속도의 불확실성, 미래 금융안정을 위한 가계부채 억제 필요성 등을 고려하면 긴축기조를 더 오래 유지하면서 향후 필요시 추가적 인상 가능성도 고려해야 한다"라고 밝힌 바 있다.

한은이 최근 발표한 '7월 중 금융시장 동향' 통계를 보면 지난달 말 기준 은행권 가계대출 잔액(정책모기지론 포함)은 1068조 1430억 원으로 사상 최대치를 기록했다. 한 달 전보다 5조 9553억 원 불어난 액수로, 2021년 9월 이후 22개월 만에 최대폭 증가다. 은행권 가계대출은 고금리와 맞물린 부동산 시장 위축 등의 영향으로 올해 들어 3월까지는 연속 감소세를 보이다가 4월부터 4개월 연속 증가 중이다. 증가폭도 4월(2조 2964억 원), 5월(4조 1557억 원), 6월(5조 8296억 원)로 점점 불어나는 추세다. 

주담대 증가는 부동산 시장 연착륙에도 부정적인 요인으로 작용한다. 최근 일각에서 부동산 시장이 바닥을 쳤다는 전망에 주담대를 중심으로 대출이 급격하게 늘었다. 여기에 한국은행이 더이상 기준금리를 인상하지 않을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자 부동산 투자 열기가 다시 고조되기 시작했다. 

주담대 만기를 최장 40년에서 50년으로 늘렸음에도 인기가 지속된 것은 일반인들의 부동산 투기 심리와 은행들의 이자 장삿속이 서로 맞아떨어졌기 때문이다. 

돈을 빌린 사람 입장에서 볼 때 만기가 늘어나게 되면 매달 상환해야 하는 월 상환액이 줄어든다. 얼핏 보면 부담이 줄어드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총 이자는 늘어나게 된다. 그럼에도 '나중에 갚으면 된다'는 안이함에 일단 빌리고 보자는 심리를 자극하게 된다. 

은행들 입장에서는 총 이자가 늘어나는 만큼 이자 장사로 배를 불릴 수 있다. 40년에서 10년 더 늘린 50년 고객을 확보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이기도 하다. 

예컨대 연 소득 5000만원인 차주가 금리 연 4.45%(전국은행연합회 공시 5대 은행의 6월 원리금 분할상환 주담대 평균 금리)로 30년 만기 주담대를 이용할 경우 DSR 40%가 적용돼 최대 3억3000만 원까지 대출을 받을 수 있다. 하지만 50년 만기 상품을 선택하게 되면 대출한도는 4억원으로 7000만원을 더 받을 수 있다.

만기는 늘지만 금리 혜택은 없다. 즉, 만기가 늘어나는 만큼 총 상환금액도 증가한다. 가령 3억원 대출 및 금리 연 4.45%를 기준으로 30년 만기 상품의 경우 이자 총액은 2억4401만원이다. 하지만 50년 만기 상품의 이자총액은 4억4874만원이다.

여전히 우리 사회 속에는 기회만 되면 부동산으로 한몫 챙기자는 심리가 짙게 깔려 있다. 경기가 침체되고 어려운 상황이 돼도 부동산 투자 시기만을 틈틈이 엿보고 있는 셈이다. 

이번에 주담대 대출이 급격하게 늘어난 것도 같은 맥락이다. 부동산 시장이 활기를 되찾을 것이라는 언론의 보도가 이어지는 상황에서 한은도 금리를 더이상 올리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자 서둘러 돈을 빌려 부동산 투자에 나선 것으로 볼 수 있다.
하지만 시장은 우리들의 예측과는 반대로 움직인다는 점에서, 부동산 시장이 다시 활기를 찾기까지에는 상당한 시일이 걸릴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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