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투리 여행 이야기 – 쵸이 발자취(31)] 우리 삶과 가장 가까운 Totem 신앙 '장승'
[자투리 여행 이야기 – 쵸이 발자취(31)] 우리 삶과 가장 가까운 Totem 신앙 '장승'
  • [자투리경제=최영규 SNS에디터]
  • 승인 2020.08.30 0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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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    우리 삶과 가장 가까운 Totem 신앙, 장승

"천하대장군(天下大將軍)"과 "지하여장군(地下女將軍)". Photo by 최영규
"천하대장군(天下大將軍)"과 "지하여장군(地下女將軍)". Photo by 최영규

장승(長栍)은 민간신앙의 한 형태로, 마을 입구나 길가에 세워진 사람의 얼굴 모양을 새긴 목상이나 석상의 기둥이다. 이런 장승은 이정표, 경계표 또는 마을의 수호신 역할을 하며, 우리나라의 전국적으로 분포되어 있는데 그 명칭도 영남지방과 호남지방에서는 벅수또는 벅시라고도 불려지며, 제주도에서는 돌하루방이라도 불리워 진다. 일반적으로 남녀 한쌍의 모양으로 마을 입구에 세워져 있으며 남자에는 '천하대장군(天下大將軍)'이라 씌어져 있으며 여자에는 '지하여장군(地下女將軍)'이라 씌어져 있다. 나무로 만든 장승은 목장승이라고 부른다.

장승. Photo by Bing Images
장승. Photo from Bing Images

장승이 서 있는 곳에는 솟대가 함께 서있는 경우가 많다. 솟대는 장승과 함께 주술적인 의미를 갖고 있으며 또한 풍요를 기원하는 의미도 가지고 있다.

솟대. 솟대란 나무나 돌로 만든 새를 나무 장대나 돌기둥 위에 앉힌 마을 공동체 신앙의 하나로 음력 정월대보름에 동제 동제를 올릴 때 마을의안녕과 수호, 풍농을 위하여 마을 입구에 세웠다. 마을의 지세에 따라서는 마치 배의 돛과 같아 홍수 속에서도 살아남게 하는 구원의 역할도 하였고 과거 급제를 기념하기 위한 의미도 있었다.  전라도에서는 ‘소주’, ‘소줏대’, 함흥지방에서는 ‘솔대’, 황해도, 평안도에서는 ‘솟댁’, 강원도에서는 ‘솔대’,경상도 해안에서는 ‘별신대’ 등으로 불리며, 솟대 위의 새는 대개 오리를   지치와지만 일부지방에서는 까마귀, 기러기, 갈매기, 따오기, 까치 등을 나타내기도 한다. Photo by 최영규
솟대. 솟대란 나무나 돌로 만든 새를 나무 장대나 돌기둥 위에 앉힌 마을 공동체 신앙의 하나로 음력 정월대보름에 동제 동제를 올릴 때 마을의안녕과 수호, 풍농을 위하여 마을 입구에 세웠다. 마을의 지세에 따라서는 마치 배의 돛과 같아 홍수 속에서도 살아남게 하는 구원의 역할도 하였고 과거 급제를 기념하기 위한 의미도 있었다. 전라도에서는 ‘소주’, ‘소줏대’, 함흥지방에서는 ‘솔대’, 황해도, 평안도에서는 ‘솟댁’, 강원도에서는 ‘솔대’,경상도 해안에서는 ‘별신대’ 등으로 불리며, 솟대 위의 새는 대개 오리를 지치와지만 일부지방에서는 까마귀, 기러기, 갈매기, 따오기, 까치 등을 나타내기도 한다. Photo by 최영규
솟대.  Photo by 최영규
솟대. Photo by 최영규
장승과 솟대. Photo by Bing Images
장승과 솟대. Photo from Bing Images

그들은 마을과 마을을 지켜주는 수호신이다. 과거에는 장승은 민간신앙의 한 형태로 마을의 수호신이나 사찰 또는 지역간의 경계표 구실을 했다. 장승은 신앙의 대상이기 때문에 신성시하여, 그 누구도 함부로 건드리거나 손 댈수가 없었다.

여러 모양의 장승. Photo by 최영규
여러 모양의 장승. Photo by 최영규

장승을 쳐다보면 무섭다. 눈썹을 치켜 올린채 두문을 부릅뜨고 노려보지만 어딘가 모르게 익살스럽고 인자하게도 보인다. 무섭게 보이지만 친근한 매력을 지니고 있기도 하다.

장승. Photo by Bing Images
장승. Photo from Bing Images

장승은 지금에는 전문적으로 제작하는 장승공예가가 있어서 그 전공 제작가가 만들고 있지만 과거에는 동네나 마을의 주민들이 모여 함께 나무를 깎아서 세웠기 때문에 친근한 매력을 줌과 함께 화합으로 이루어진 작품이었다. 그래서 그 마을 그 지역마다 표정과 모양, 질감이 제 각각인 가운데 따스하고 친근한 정서가 숨어 있는듯하다.

 

익살스런 장승의 모양. Photo by 최영규
익살스런 장승의 모양. Photo by 최영규

장승은 그 마을이나 동네에 사는 사람들이 무엇인가를 소망하고, 기도하며, 어려울 때 매달리는 곳이었다. 그래서 장승은 서 있는 자리도 마을 사람들이 가장 많이 다니는 장소를 택하여 세워졌다. 액운을 막아주는 수호신 역할을 하다 보니 마을 입구에서 비바람을 맞으며 긴 시간을 보내온 장승의 모습은 자연스럽게 지저분하고 인상이 험하게 느껴질 수 밖에 없었다.

최근 장승공예가들이 만드는 장승의 표정은 예술적으로 승화하여 다양하고 풍부하지만 그 느낌은 과거와는 판이하게 다르게 보여지고 있다. 장승의 역할과 상징성이 거의 없어져 가는 현대 사회를 보면서 우리 조상들의 민속신앙이 잘 보존 되기를 다시 한번 되새겨 본다.

 

자료 출처

1. 한국콘텐츠진흥원

http://www.culturecontent.com/content/contentView.do?search_div=CP_THE&search_div_id=CP_THE004&cp_code=cp0415&index_id=cp04150331&content_id=cp041503310001&search_left_menu=3

2. 한국민족문화 대백과 사전

http://encykorea.aks.ac.kr/Contents/Index?contents_id=E0048619

3. Bing Images

https://www.bing.com/images/search?q=%ec%9e%a5%ec%8a%b9&qpvt=%ec%9e%a5%ec%8a%b9&form=IGRE&first=1&scenario=ImageBasicHov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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