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이 31일 정부서울청사에서 브리핑을 열고 철근 누락 LH 아파트의 명단과 시공사, 감리 담당사 등을 공개하고 있다. 원 장관과 이한준 LH 사장. 사진=국토교통부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이 31일 정부서울청사에서 브리핑을 열고 철근 누락 LH 아파트의 명단과 시공사, 감리 담당사 등을 공개하고 있다. 원 장관과 이한준 LH 사장(사진 오른쪽). 사진=국토교통부

한국토지주택공사(LH) 비리는 이번 뿐만 아니다. 

잠잠해질만 하면 문제가 불거진다. 그것도 고구만 줄기처럼 캐내면 캐낼수록 계속 나온다는 게 문제다. 한마디로 고질적이다. 조직 내부에 병폐가 깊숙히 자리하고 있다. LH는 2년전에도 임직원 땅 투기사건으로 큰 곤욕을 치렀지만 별반 달라진 게 없다.

2021년 집값이 천정부지로 폭등하고 있는 와중에 LH 전·현직 직원들의 대규모 땅 투기 등이 적발된 LH 사태 이후 엄청난 질타를 받았고 한때 'LH 해체론'까지 대두됐다. LH는 지난 2021년 6월 '인력 20% 이상 감축', '취업제한 임직원 규모 500명대 확대' 등을 담은 혁신방안을 발표했고 국토교통부도 지난해 'LH 혁신점검 TF(태스크포스)'를 꾸려 강도 높은 개혁을 감시했다.

원희룡 국토부 장관은 지난해 11월 이한준 LH 사장 취임 당시 “LH를 신뢰할 수 있는 조직으로 만들어달라”며 자체 혁신방안을 주문한 바 있다. 하지만 공염불에 그치고 말았다. 공공임대 아파트 품질을 높이겠다는 내용의 자체혁신안 내놓은지 불과 7개월도 안된 상황에서 무량판 부실 시공 문제가 또다시 터졌다.

LH가 2017년 이후 무량판으로 발주해 시공사를 선정한 91개 단지 가운데 15개 단지에서 기둥 주변 보강철근이 부족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 15곳 가운데 5곳은 시공(단순 누락, 다른 층 도면으로 배근)문제, 10곳은 설계상 문제(도면표현 누락, 구조계산 오류)로 분석됐다. 시공 전 설계 단계에서 오류가 발생했고, 설계대로 시공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오류를 잡아내는 감리 역시 제 역할을 하지 못했다.

이한준 LH 사장은 그동안 공사 발주만 했지, 제대로 관리 감독을 하지 않은 점을 시인했다.

이 사장은 전단보강근 누락과 관련해 "그동안 LH는 주택에 대해서 발주만 했지 관심이 없었다. LH 공사 사장으로 대단히 송구스럽게 생각하고, LH는 모든 분야에 대해 책임을 질 수밖에 없다"며 "앞으로 15개 단지에 대한 설계가 어디에서 발주됐고, 관여한 자가 누구인지, 감리는 언제 발주됐고 감리 관여한 자는 누구인지, 시공업체들은 어떻게 선정하고 관여한 자가 누구인지 모두 조사해 관련된 사람은 한치의 의혹 없이 책임지게 하겠다"고 말했다.

LH가 2년 만에 또 다시 최대 위기에 봉착했다. 지난 2021년 LH 전·현직 직원들의 투기 의혹, 일명 'LH 사태' 이후 그간 고군분투해왔지만 최근 잇따른 부실공사 주범으로 '이권 카르텔'이 지목되면서 대규모 문책성 인사와 사정당국 수사 등 극약처방은 피할 수 없을 전망이다. 진주혁신도시 소재 LH 전경. 
LH가 2년 만에 또 다시 최대 위기에 봉착했다. 지난 2021년 LH 전·현직 직원들의 투기 의혹, 일명 'LH 사태' 이후 그간 고군분투해왔지만 최근 잇따른 부실공사 주범으로 '이권 카르텔'이 지목되면서 대규모 문책성 인사와 사정당국 수사 등 극약처방은 피할 수 없을 전망이다. 진주혁신도시 소재 LH 전경. 

이번 사건을 계기로 LH의 시공, 설계, 감리 선정 절차와 권한에 대한 철저한 검증이 필요하다. LH의 셀프감리와 부실시공 관리·감독 소홀 문제는 매년 국정감사 단골메뉴로 등장해왔다. 지난해 9월 장철민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LH로부터 제출받은 ‘공사 현장 감리 인력 현황’ 분석 결과에 따르면 LH가 자체감리하고 있는 공사현장(단지·주택) 166곳 가운데 142곳(85.5%)이 법정 감리 인력을 충족하지 못했다. 

이번에 부실이 확인된 현장뿐 아니라 최근 5년 동안 LH의 대규모 공사 현장 감리는 LH 출신 인사들을 영입한 이른바 전관 회사들이 도맡은 것으로 확인됐다. LH 전직 임직원들이 재취업한 회사가 감리를 맡은 셈이다.

최근 5년 사이 사업비 규모가 큰 LH 공사 현장 10곳의 감리 회사를 확인해본 결과, 10개 사업 가운데 8개 사업에서 LH 출신을 영입한 이른바 '전관 업체'가 계약을 체결한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LH 전·현직 직원들의 땅 투기 사건이 불거진 이후 까다로운 취업 심사를 거쳐야 하는데도 2급 이상 고위간부 10명은 용역 업체에 재취업을 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들이 재취업한 업체에서 LH와 계약한 용역비만 1900억 원이 넘는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경실련)은 4월 인천 검단 신축 아파트 지하주차장 붕괴 사고의 원인은 한국토지주택공사(LH)의 '전관특혜'라면서 31일 감사원에 감사를 청구한다고 밝혔다. 경실련은 이날 오전 서울 종로구 감사원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검단 아파트) 공사의 설계·감리를 맡은 업체가 LH 전관 영업업체"라며 "국토교통부는 설계·감리·시공업자를 비난만 할 뿐 원인으로 충분히 지목될 수 있는 전관특혜 문제는 어떠한 언급도 하지 않았다"고 비판했다.

LH 출신을 영입한 건설업체들이 그간 사업 수주 과정에서 혜택을 받았고 LH가 이들의 부실한 업무 처리를 방치하면서 붕괴 사고까지 발생했다는 게 경실련의 주장이다.

경실련은 "감사원은 LH 설계용역 수의계약과 건설사업관리용역 종합심사낙찰제(종심제) 과정에서 불공정한 평가가 벌어졌는지 확인하고 공정한 평가체계가 만들어지도록 시정을 강력히 권고해야 한다"며 "LH뿐 아니라 모든 퇴직 공직자에 대한 전관특혜 근절방안을 제시하고 정부와 국회는 붕괴 사고 재발 방지를 위한 직접시공제 전면확대 실행방안을 수립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원희룡 국토부 장관은 지난 30일  "국민의 신뢰를 받아야 할 LH 공기업이 지은 아파트에서 이런 심각한 문제가 발생한 것은 부끄러운 일"이라며 "LH에 대한 감독 부처로서 공공주택에 대한 사업 감독을 책임지는 국토부 장관으로서 저는 무거운 책임감을 직접 짊어지고 이런 문제들을 원칙대로 처리하고 한시도 국민의 의혹이 없도록 철저하게 대처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결론적으로 모든 책임은 좌든 우든 이권 카르텔에 있다"며 "우리 정부는 반카르텔 자유공정 정부로서 이를 단호하게 조치하고 건설분야에서의 이권 카르텔에 대해 전반적인 혁신 조치를 취할 것"이라고 말했다.

원 장관이 언급한 '이권 카르텔' 문제는 멀리 있지 않다. 등잔 밑이 어둡듯, 바로 가까이에 문제의 원인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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